이처럼 행사가 성황리에 열리기까지 일본인 후사요 이리쿠라(사진)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 후사요씨는 1994년 가정연합 창시자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선교사 1600명을 국외로 파송할 당시 요르단에 부임해 지금까지 활동하며 이런 거대한 기반을 만들었다. 후사요씨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 열악한 선교지에서 활동하느라 애로사항이 많겠다.
“처음 선교사로 발령받아 와서 3년 동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언어가 가장 큰 문제였다. 3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었다. 3년이 지나자 처음 10명이었던 동료 선교사는 거의 다 돌아가고 두 명만 남았다.”
▲ 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는 중동의 실태는 어떤가.
“가난하고 부모가 없는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가 살인과 테러를 학교처럼 가르치고 있었다. 군인·경찰을 납치해 가둬놓고 한 사람씩 가장 처절하게 살인하는 방법을 훈련시켜고 있었다. 어떤 경우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살폭탄’ 테러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테러를 배우는 아이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14살 어린이가 폭탄을 터뜨리려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팔다리를 잃었다. 종교 간 대립의 현장에서 내 눈으로 보고 확인했다. 그래서 더더욱 떠날 수 없다.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2000년 나머지 한 명마저 일본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 요르단에서의 구체적 활동은.
“요르단에서의 활동은 세계평화여성연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1997년 여성연합이 요르단 정부의 인가를 받아 공식적 활동이 가능해졌다. 여성들이 일을 배울 수 있는 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고,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고, 난민을 위한 지원과 봉사활동을 한다. 직업교육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미용·바느질·컴퓨터 등이다.”
▲ 가장 어려운 점은.
“많은 사람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 괴롭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가정연합의 ‘원리’로 주위의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해 성장시키겠다.”
▲ 일본의 가족은 어떻게 지내나.
“일본은 6개월마다 한 번씩 간다. 처음 일본을 떠나올 때 아들이 다섯 살이었는데 지금 스물네 살이 되어 올해 취직을 했다. 외롭게 지낼 남편에게도 미안하지만 요르단을 두고 돌아갈 수가 없다.”
▲ 다른 하고 싶은 말은.
“지난 2월22일 기원절 이후 하늘부모님(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느낀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노력하겠다. 참어머님(한학자 총재)께서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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