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만든 태고의 비경… 만년설 녹으며 수많은 폭포수 쏟아져…
한차례 비가 내린 후 절벽 앞에 걸린 선명한 무지개, 카메라보다 내 마음에 더 깊이 각인

피오르의 본고장 노르웨이에서 승용차로 이동하다 보면 해안가가 아니고 제법 내륙인데도 바다인지 강인지 아니면 호수인지 분간이 안 되는 풍광을 종종 접한다. 그럴 때는 현지 안내원한테 물어봐야 한다. “피오르”라는 답이 돌아오면 ‘아, 여기도 바다의 일부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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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당에르피오르에 잠시 비가 흩뿌리더니 초대형 무지개가 피어났다. 피오르를 자주 접하는 노르웨이인들도 “이렇게 크고 선명한 무지개를 보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
베르겐과 플롬을 잇는 기찻길 자체가 충분히 근사한 볼거리다. 왼쪽 창가 옆 좌석에 앉든 오른쪽에 앉든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피오르가 지나간다. 요즘 같은 봄에는 높다란 산꼭대기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좁은 폭포수로 변해 쉴 새 없이 바다로 떨어진다. 해발 866m에 자리 잡은 뮈르달 역에서 한 차례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산악철도로 유명한 ‘플롬스바나’다. 4월 하순인데도 한겨울처럼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며 여기가 고산지대임을, 또 북극과 가까운 곳임을 새삼 실감한다.
플롬에선 유람선을 타거나 쾌속 보트에 의지해 피오르 곳곳을 탐험할 수 있다. 승용차보다 훨씬 더 빠른 쾌속 보트를 이용할 때는 방한복·방한모·장갑을 착용하는 등 ‘중무장’을 해야 한다. 보트가 달릴 때 거센 맞바람으로부터 얼굴, 특히 눈을 보호하려면 고글을 쓰는 것도 필요하다.
몸과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한 뒤 보트에 오르면 출발과 동시에 가슴이 후련해지는 시원한 풍경과 접하게 된다. 차갑고 푸른 바닷물, 좁은 물길을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산과 높다란 절벽들, 낭떠러지 위의 눈이 녹으면서 쏟아지는 좁고 기다란 폭포수….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인데도 산과 바다가 만나는 비좁은 평지에는 어김없이 작은 마을이 형성돼 있다. 옹기종기 모인 단층집들이 정겹다. 텃밭을 가꾸던 젊은이가 외지인을 잔뜩 태운 보트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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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호를 타고 하르당에르피오르의 절경을 감상하는 관광객들. |
송네피오르와 쌍벽을 이루는 게 하르당에르피오르다. 플롬을 떠나 울렌스방으로 이동하는 길에 하르당에르피오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플롬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항구에 도착한 차는 승객을 태운 채 그대로 배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과 차를 동시에 실어나르는 페리다. 배가 운행하는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차에서 내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갑판 위로 올라가면 말 그대로 피오르의 향연이다.
지금 계절은 봄이지만 피오르는 모든 계절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다. 멀리 산꼭대기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고, 도처에서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습도가 높은 데다 높다란 절벽이 곳곳에 있으니 국지적으로 비가 흩뿌리기 일쑤다. 하늘도 맑았다가 어두워졌다가 시시각각 돌변한다. 구름이 무서운 속도로 지나갔다가 또 잔뜩 몰려들기를 반복한다.
피오르에서 흐린 날씨에 비를 만났다고 투덜댈 일만은 아니다. 갑판 위의 승객들이 갑자기 한곳으로 몰려간다. 피오르의 절벽 앞에 대형 무지개가 걸렸다. 이렇게 큰 무지개를 보긴 처음이다. 맨 위 빨간색부터 아래의 보라색까지 일곱 빛깔이 선명하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문득 ‘사람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카메라가 얼마나 정직하게 반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렌스방을 거쳐 ‘석유의 도시’ 스타방에르로 이동하는 내내 하르당에르피오르가 시선을 유혹한다. 이른 아침 차가운 공기와 바닷물이 만나 생긴 안개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질 때 특히 그렇다. “자연에서 힘을 얻는다(Powered by Nature)”는 노르웨이인들의 자랑이 빈말이 아님을 깨닫는다.
플롬·울렌스방=글·사진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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