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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 가슴시린 노래 '암연'의 주인공 고한우

입력 : 2013-04-02 17:24:24 수정 : 2013-04-02 17: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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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음반 만들고 싶어요”

 

1997년은 대한민국 가요계의 전성기였다. 당시 가요계 양대 산맥이었던 H.O.T와 젝스키스 뿐만 아니라 양파, 쿨, DJ DOC, 클론 그리고 김경호까지 걸출한 가수가 배출됐다. 히트곡 전성시대였던 1997년 빼놓을 수 없는 곡이 있다. 바로 감미로운 기타연주로 시작되는 고한우의 ‘암연’이다.

‘내겐 너무나 슬픈 이별을 말할 때
그댄 아니 슬픈 듯 웃음을 보이다
정작 내가 일어나 집으로 가려 할 때는
그땐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어‘

이 노래는 애절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어우러져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고한우는 당시 “어딜 가도 길거리에서 ‘암연’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무명시절의 설움을 다 잊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1997년 IMF가 온지도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지금 불교방송 ‘활력충전 2시 4시’ 진행을 4년 째 맡고 있다. 그는 2시에서 4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2시 4시라고 불렀다. 그는 DJ가 된 이후 성격도 밝아지고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강상준의 7080사람들이 그를 찾아 서울 마포에 있는 불교방송으로 향했다. 녹음을 마치고 나온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유쾌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 라디오 외에 좀처럼 만나기 힘든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활동을 안 한다기보다 설 무대가 많이 없어서 못하는 겁니다. DJ하면서부터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있는데요. 어떤 것을 갈구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고요. 앨범을 함부로 낼 수도 없는 위치가 된 거죠. 후배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좋은 음악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다시 홍보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가수들은 각자 색깔이 다르잖아요. 흔히 사람들이 제 색깔은 ‘암연’을 많이 알고 있지만요. ‘비연’ 등 다른 곡들이 많아요. 나름대로 예술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떠나보낸 내 자식 같은 노래를 다시 PR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품은 계속 쓰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대중에게 어떻게 보여질 지 두렵습니다. 몇 번의 실패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암연’ 외엔 알려진 곡이 거의 없으니까요.” 

- DJ 한지는 얼마나 됐나요.

“DJ 시작한지는 7년 정도 됐고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불교방송 ‘활력충전 2시 4시’는 4년 정도 됐습니다. 제가 좀 게으른 편입니다(웃음). 라디오 진행은 꼬박꼬박 잘 하고 있어요. 학창시절에도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시험은 제때 봤거든요.” 

- ‘활력충전 2시 4시’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불교방송이지만 종교에 관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음악 프로그램이고요. 남녀노소와 소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방송하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 있어요. 특히 생각의 폭이 넓어져서 아주 좋습니다. 성격도 많이 밝아졌고요.” 

- 지금의 고한우를 있게 한 ‘암연’은 어떻게 발표하게 됐나요.

“제가 생각하는 ‘암연’의 곡 완성도는 70~80점 정도예요. 이 곡을 만들 당시에 제 마음이 아팠어요. 그 마음을 표현한 겁니다. 작업을 풀 밴드로 녹음했다가 들어보니까 트로트 같은 냄새가 살짝 나는 거예요. 워낙 좋은 곡이라 기타로만 녹음을 해봤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기타는 함춘호 씨가 녹음을 했습니다. 가수의 목소리가 잘 들리니까 가사 전달력도 좋았어요. 당시엔 ‘이 노래가 뜰까?’라는 고민 없이 그저 음악적 표현에만 집중했어요.” 

- ‘암연’이 데뷔곡 인가요?

"첫 음반은 1988년에 나왔어요. 당시엔 언더그라운드로 다운타운에서 공연을 많이 했는데요. 종로에 ‘영스타’라는 라이브카페가 있었어요. ‘영스타’ 사장이 ‘가수를 키워보자’고 해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그 때 제가 발탁돼서 첫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우주기획’이라는 곳이었데요.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수준의 회사였어요. 당시 이은하, 김범룡, 양하영 씨 등이 소속돼 있는 회사여서 부푼 꿈을 안고 앨범을 냈죠. 결과는 잘 안됐어요. 두 번째 음반은 신촌뮤직 장고웅 씨를 통해 발매했어요. 이 음반도 잘 안됐어요. 제 운명이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 주변 분들이 ‘좋은 회사 들어갔으니 잘 될 거다’라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죠(웃음). 군 제대 이후 2년 정도 작업해서 ‘암연’이 탄생한 겁니다." 

- ‘암연’이 드라마 OST에 수록됐었죠.

“드라마 OST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닙니다. ‘암연’ 녹음작업을 다 마친 후에 어떻게 홍보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제 대학선배 중에 유명한 CF 감독이 있었어요. 그 선배가 '암연'을 명세빈 씨가 찍은 ‘초코하임’ 광고 삽입곡으로 넣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특히 가사내용과 딱 맞아 떨어졌지요. 심지어 선배가 ‘성우가 녹음하면서 울더라’고 했어요. 음반 발매 전 이야기입니다. 광고가 나간 후에 사무실에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또 하나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가 있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유영선 음악감독이 ‘여자’라는 SBS 드라마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제 곡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제 음반에 있는 곡을 드라마 OST에 수록한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운인 것 같아요. 가수가 잘되려면 실력 뿐만 아니라 운이 따라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때 운이 참 좋았어요. 이 모든 것이 1997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전 국민이 IMF로 어려울 시기였는데요. 저는 IMF가 온지도 몰랐어요(웃음).“

- 당시 ‘암연’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요.

“언더그라운드 했다가 잘된 분들이 많아요. 김건모, 이정섭 씨 등 몇 분이 있는데요. 저는 무명이 꽤 길었어요. 무명시절에 ‘내가 왜 가수를 하려고 할까’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어요. 어려움 끝에 작업을 마치고 ‘암연’ 앨범이 나왔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온통 제 노래만 나오는 거예요. 테이프 가게 앞에서 제 노래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당시엔 인기 있는 곡을 테이프 앞뒷면에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해서 하루 종일 틀었거든요. 그게 제 곡이었으니까 얼마나 기뻤겠어요. 이 시기에 무명시절에 받은 설움을 전부 보상받았다고 생각해요.” 

- 최근에 ‘나는 가수다’에서 김경호 씨가 불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경호 씨는 정말 좋은 가수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경호 씨가 1997년에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곡으로 히트를 쳤잖아요. 저는 ‘암연’ 활동 막바지였어요. 경호 씨와 저는 대기실에 가면 어울릴 사람이 없는 거예요. 거의 다 댄스가수였으니까요(웃음). 동병상련으로 방송국에서 만나면 대화를 많이 나눴죠. 최근에 ‘나는 가수다’에서 경호 씨가 ‘암연’을 부른 이유가 제 생각엔 경호 씨가 좋은 노래라고 생각해서 부르지 않았나 싶네요. 이제는 어떤 곡이나 작품이 있으면 좋다 나쁘다 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워요. 다들 데뷔한지 15년이 넘었으니까 각자의 색깔이 있잖아요.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암연’을 다시 부른다고 해도 똑같이 부르진 않을 것 같아요. 많은 가수들이 ‘암연’을 리메이크했는데 각자 색깔이 다 다르더라고요."

- 기억에 남는 팬은.

“캐나다에서 편지가 왔어요. 편지 봉투 안에 100달러가 들어 있더라고요. 편지 내용을 보니 ‘이별을 했는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큰 위로가 됐다. 고맙다’고 씌어 있더라고요. 음악인들은 자존심이 세잖아요. 그래서 제가 ‘말씀만 들어도 고맙다. 돈을 돌려드리겠다’고 답장을 보냈어요. 다음에 또 편지가 왔는데 200달러가 들어있더라고요. 제가 또 다시 돌려보냈어요. 이후에 답장이 안 오더라고요(웃음). 제 노래를 좋아해주셔서 참 뿌듯했던 기억에 나네요.” 

- 음악은 언제 시작했나요. 

"고등학교 때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알게 됐고요. 대학 때 아르바이트 하면서 음악을 시작했어요. 아르바이트로 돈을 많이 벌었어요. 통기타 치는 선배들이 멋있어서 시작했어요. 들국화, 김광석 씨와 친하게 지내던 김두수, 이종만 씨가 저의 우상이었어요. 제 눈엔 정말 멋져 보였거든요. 두수, 종만 씨와 같이 생활을 했어요. 원래 제 꿈은 음악이 아니었어요. 이 분들이 멋있어 보여서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거죠. 제가 홍익대학교 창작음악동아리 ‘뚜라미’ 출신인데요. 제 인생에 있어서 음악에 대해 가장 깊은 성찰을 했던 시기였어요. 어떤 곡을 들으면서 취지와 목적, 배경 등 아주 깊이 공부하고 생각도 많이 했어요. 당시에 정말 괴로웠던 것이 회의를 해서 좋은 곡을 선정해서 공연에 올리면 되는데요. 꼭 공연의 목적과 취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보니까 정말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동아리 활동이 제 음악생활의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열변을 토하면서 곡 분석하고 싸우고 했거든요. 돌이켜보면 동아리 활동은 음악 자체를 생각하면서 하게끔 훈련했던 고마운 시기였습니다." 

- 앨범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써 놓은 곡은 아주 많아요. 저는 항상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 같아요. 잘못내면 기념음반 될 것 같아요. 제 목표는 명반(좋은 음반)을 발매하는 겁니다. 음원 수익을 떠나서 정말 좋은 음반을 만들고 싶고 대중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요. 나중에 ‘그 음반 정말 좋았어’ 이런 평을 들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들국화, 산울림 등 많잖아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앨범을 내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음악을 폭 넓게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는데요. 어느 것도 상관없습니다. 불법 다운로드는 지양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고한우의 음악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뉴스팀 wtod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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