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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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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02 19:52:18 수정 : 2013-04-02 19: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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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설립 양서 만들기 37년
동아 해직기자 출신 ‘출판계 원로’
사상·인문 서적 3000여권 출간
깨어있는 독자가 좋은책 만들어
출판인 김언호(68)는 한 권의 책을 엮으며 한 시대의 정신을 담았다. 그에게 책은 열려 있는 도서관이자 대학이었다. 1976년 한길사를 설립한 그는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채찍을 맞으며 민주주의를 외친 청년들에게 사상의 젖줄을 보급했다. 책을 펴내는 일은 진실을 추구하는 양심의 발걸음이었다. 1970년대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송건호), ‘역사와 더불어 비애와 더불어’(고은), ‘우상과 이성’(리영희’) 등 시대정신을 탐구하는 책들이 한길사에서 출간됐다. 1974년 정권의 언론 통제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한 그는 이듬해 동아일보에서 해고됐다. 타 언론사·기업·정치권으로 편입된 해직기자들과 달리 그는 출판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운영하는 한길사는 37년간 외풍에 맞서 3000여 권에 이르는 사상·인문학 서적을 발행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사상적 열기가 꺼지고 2000년 이후 디지털 시대를 맞아 출판계 전체가 흔들렸지만 한길사는 시대정신을 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김언호 이사장에게 2013년은 1970년대보다 위태로운 빈곤의 시대다. 그는 “민주화가 이뤄진 뒤 정신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며 “지금이야말로 ‘어떻게 살 것인가’ 자문하며 책을 읽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책 읽지 않는 시대, 이제 그는 사상서 발간보다 책 읽기 운동에 팔을 걷어붙였다. 책축제 파주북소리 페스티벌 조직위원장,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 이사장은 출판문화운동의 일환으로 ‘100인의 1000강좌’ 운동, 도서관호텔 건립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앞서 2003년에는 출판계 동료와 힘을 모아 경기 파주에 출판도시를 세우는 역사적인 결실을 맺었다.

한길사가 입주해 있는 파주출판도시에서 지난달 29일 김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출판계 대원로가 아니냐”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나는 아직 청년이다. 청년정신을 견지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젊은 출판인이었다. 또 카메라 앞에서 “여자들이 좋아할 만하게 찍어 달라”고 농담하는 재치 있는 지성이었다. 손 닿는 곳곳마다 한길사의 새 책과 오래된 문고판, 그림집, 사진이 놓여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값진 땀방울을 흘리는 김 이사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책을 만들게 된 계기와 동력은.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하고 1975년 자유언론실천운동에 동참하다가 해직됐다. 당시 130여 명이 잘렸고 대부분 기업·운동권·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지만 나는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나의 장점과 기량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살펴보다가 ‘책과 살았으면 좋겠다’는 잠재된 열망을 발견했다. 부산 보수동의 큰 책방 골목에서 살았던 학창 시절의 기억과 서울 청계천 골목 책방을 돌아다녔던 대학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동력에는 통제와 탄압을 일삼았던 엄혹한 시대가 있었다. 나는 그 시대에 감사하다. 내가 편한 조건에서 책을 만들었다면 ‘헝그리 정신’을 갖지 못했을 거다. 엄혹한 시기에 책을 펴내면서 책 만들기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데, 책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가.

“출판인으로서 책 만드는 과정의 의미를 설명하면 대답이 될 것 같다.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한다. 나는 37년째 고민하면서 책과 씨름하고 있다. 좋은 책을 읽으면 한 시대와 호흡할 수 있다. 또 이제는 책을 읽지 않으면 도태된다. 창조적인 발상은 좋은 책을 읽고 생각,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책을 던져버렸다.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미래에 문화적인 존재로 살 수 없게 된다. 인터넷 문명이 발달했지만 그곳에 있는 정보로는 깊은 성찰과 창조적인 발상을 할 수 없다. 되레 많은 사람이 쓸데없는 인터넷 정보에 매달리며 생활의 일부를 허비하고 있다. 새 정부가 문화융성을 3대 국정지표 중 하나로 내세웠는데, 문화융성의 토대가 독서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문화는 한 사회의 문화적 인프라이고 국민이 누려야 할 문화복지다.”

―출판문화가 활성화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우선 깨어 있는 독자가 많아야 한다. 나는 ‘책의 탄생 Ⅰ·Ⅱ’(1997), ‘책의 공화국에서’(2009), ‘한 권의 책을 위하여’(2012) 등 책 만들기의 소중함을 담은 일련의 책들을 발간했다. 최근 펴낸 ‘한 권의 책을 위하여’에서는 머리말에 ‘독자들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다. 깨어 있는 독자가 없으면 양질의 출판문화가 형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좋은 책을 읽어야 좋은 작가가 탄생한다. “노벨상을 받자, 번역 인력을 키우자”고 말할 게 아니라 먼저 국민이 좋은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가벼워지면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책을 평가할 수 있는 독자가 생겨야 좋은 책이 만들어진다. 내 바람은 출판사들이 함부로 책을 못 내도록 하는 독자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시시한 책은 깔아버리고 좋은 책에는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는 그런 토양이 일궈졌으면 한다.”

―지금껏 출판문화운동을 펴왔는데 새롭게 구상하는 프로젝트가 있나.

“파주출판도시도 출판문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작은 출판사들이 1980년대부터 논의를 모아 손에 손을 잡고 이곳에 집단으로 터를 잡았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파주출판도시는 출판인의 자부심이다. 이곳에서 책축제 파주북소리를 2년 전 처음 열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회에 30만명이 파주를 찾았고, 지난해에는 45만명이 몰려들었다. 올해는 5월5일 어린이날 즈음에 진행하는 어린이 책축제에 20만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람들은 파주출판도시를 멀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합정역에서 버스를 타면 20여 분 만에 도착한다. 앞으로는 책방에서 강좌운동을 열고, 도서관호텔도 만들 예정이다. 우리나라 최고 연구자 100인이 10번씩 시민을 위해 강연하게 하고, 아시아센터 게스트하우스를 20만권의 책이 전시된 도서관호텔로 개조하는 것이다. 정말 멋지지 않나. 호텔 서가를 만드는 데만 1억원이 소요된다. 책 기부도 받아서 기증자 이름을 책장에 붙이려고 한다. 아시아계 학자들의 반응이 좋다. 세계의 명물을 만들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현재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있는 파주출판도시를 문화산업특구로 재지정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21세기에는 지식정보를 잘 기획·조직·제작하는 요원들이 필요하다. 바로 출판인이다. 정부에서는 출판계 자체적으로 양성하라고 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개인에게 맡기면 절대로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로 된 책을 출판하기도 한다. 아무도 안 읽지만 문화 보존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한다.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는 이런 문화적인 힘이 있다. 출판기획자를 공공부문에서 지원해 육성해야 한다. 지난 1월 국회에 발의된 도서정가제도 필요하다. 책은 일반 상품과 다르다. 과잉 경쟁에 따른 가격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도입돼야 한다. 연장선상에서 도서관 정책도 문제 삼을 수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는 책은 여러 명이 보지만, 우리는 일반에 판매하는 책과 동일하게 도서관에 판매하고 있다. 도서관과 출판사가 협약해 도서관 책은 장정판으로 단단하게 감싸고 양질의 종이로 보존력을 높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도서관용으로 따로 몇 백부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국내 도서관들은 이런 논의는커녕 대량 구입한다는 이유로 가격을 후려치고 있다. 공공부문의 배려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담=정승욱 선임기자

정리 이현미, 사진 이제원 기자  engine@segye.com

◆ 김언호 이사장 약력

▲ 경남 밀양(1945) ▲ 중앙대학교 신문학과 ▲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 1968 ~ 1975년 동아일보 기자 ▲ 1976년 ~ 한길사 대표 ▲ 1997 ~ 2005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이사장 ▲ 1998년 ~ 도서출판 한길아트 대표 ▲ 2008 ~ 2011년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의장 ▲ 2011년 ~ 파주북소리 페스티벌 조직위원장 ▲ 2013년 ~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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