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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세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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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01 02:27:48 수정 : 2013-04-01 02: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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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는 것에 비해 가장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신체부위가 발이다. 주인의 무거운 몸을 지탱하느라 굳은살이 돋고 물집이 잡히지만 양말과 신발 속에서 퀴퀴한 냄새를 벗삼아 지내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눈, 좋은 것을 만져보는 손과 같은 호사는 언감생심이다.

발은 가장 미천한 지위에 있지만 중요한 존재의 상징이다. 세족식의 의미가 각별한 이유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최후의 만찬에서 12제자의 발을 씻겨준 뒤 한 말이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섬기는 자세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종교인의 자세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가톨릭교회 세족식의 시작이다.

세족식은 부활절 이전 수난주간 목요일에 교황과 사제가 평신도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세족식을 위선이라고 배척해 개신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요즈음에는 세족식이 종교 울타리를 벗어나 진화 중이다. 지휘관이 고된 훈련을 받느라 부르튼 병사의 발에 입맞춤을 하며 위로하고, 남남처럼 지내던 아버지와 아들이 눈물의 세족식을 치르며 화해한다. 세족식이 소통과 갈등치유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목요일인 지난 28일 소년원을 찾아 전통 법규를 무시하고 이슬람교도, 여성, 그리스 정교회 신도 등 원생 12명의 발을 씻겨주는 의식을 치렀다. 교황이 여성, 무슬림, 그리스 정교도에게 세족식을 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가톨릭의 금기를 깨는 시도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일부 성직자는 반발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교황의 소통과 갈등치유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오히려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전통주의자의 편협성이 아닐까.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독단이 얼마나 많은 살인과 전쟁을 낳았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교황이 한 것과 같은 ‘사랑의 세족식’은 확산되어야 한다. 지구촌에서 갈등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소외받는 이들이 없어질 때까지. 필자부터 당장 아내와 아이들의 발을 씻겨주고 입을 맞추어야겠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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