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발표된 노래 ‘My way’의 주인공 가수 윤태규. 그는 ‘My way’로 긴 터널과도 같은 25년의 무명가수 딱지를 뗐다. 지금도 중년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동안 5번이나 음반을 내고도 얻지 못한 가수로서의 명성을 그는 이 노래 하나로 얻었다. 2005년 발표된 노래로 이름이 알려진 탓에 그를 7080가수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1983년부터 노래를 불렀다. 무명의 설움으로 보내면서 그는 등산으로 체력을 키우면서 훗날을 도모했다. 노래를 시작하고 30년이 되도록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래 연습을 했다. 덕택에 가수로서 노래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중년의 농도 짙은 중후함이 그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었다.
최근 그는 해군 홍보단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만난 가수 이승훈, 추가열과 ‘가가형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다. 2011년부터 국군방송에서 ‘윤태규의 2시의 휴게실’ 진행을 맡고 있다. 강상준의 7080사람들이 서울 용산구 후암동 국군방송에서 그를 만났다.

- 특별한 곳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요. 여기가 어딘지 간단히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이곳은 제가 생방송을 하는 스튜디오입니다. 국군방송 ‘윤태규의 2시의 휴게실’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방송을 합니다. 햇수로 3년차 됐습니다. 지금 국군방송의 꽃입니다(웃음).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는 국군방송 청취율이 취약한 시간대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프로그램 살아나서 열심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군방송의 얼굴이라는 소문도 있더라고요."
- ‘윤태규의 2시의 휴게실’은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국군방송이라고 하면 국군이 방송을 듣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실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군은 이 방송을 들을 시간이 없거든요. 제 프로그램은 군 자녀를 둔 가족과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국군의 소식을 듣는 국민의 방송인 셈이죠. 그래서 7080 세대들이 즐겨들었던 음악을 위주로 방송을 꾸미고 있어요. 많은 분들의 사연과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4일 첫 방송을 했는데 차츰 인기가 높아가고 있어요. 청취율이 꽤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 원래 가수가 꿈이었나요.
"고향이 충남 태안인데요. 워낙 축제가 많은 동네였어요. 어렸을 때 노래자랑에 나가면 상을 휩쓸었어요. 노래 잘한다고 동네에 소문이 나서 어르신들이 노래를 시키면서 용돈을 주시곤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남진, 나훈아 선배의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불렀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기타를 접하면서 ‘어니언스’를 알게 됐고요. 이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수의 꿈이 변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한 것은 1983년입니다. 명동 쉘브르에서 DJ 이종환 씨에게 발탁되면서 시작했어요. 벌써 30년이 됐네요. 쉘브르에서 2년 정도 노래하다가 육군 영장이 나왔는데 해군 홍보단 오디션에 합격해서 입대를 했습니다,
88올림픽 직전에 제대를 해서는 가수 이상우 씨가 소속돼 있던 회사에 스카우트가 됐어요. 1989년 1집을 냈는데 타이틀은 ‘외로운 고백’이라는 곡입니다. 군에 있을 때 직접 자작곡한 노래인데 아쉽게도 홍보를 제대로 못해 앨범이 사장됐지요. 아픈 기억이네요."
- 해군 홍보단은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요.
"해군 홍보단은 육군의 ‘중앙 문선단’처럼 복무 기간 3년 내내 공연을 합니다. MC, 밴드, 가수를 합쳐 총 25명 정예요원이었어요. 당시 MC는 지석진, 김용만 씨였고, 가수는 저와 김건모, 이승훈, 추가열,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빛과 소금’의 박성식, 장기호 씨 등이었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인들과 같이 공연을 한 것이죠.
저는 대학에서 하는 음악공부보다 해군 홍보단에서 3년 동안 접한 다양한 음악이 가수생활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군에 입대할 당시만 해도 복무기간이 3년이었는데요. 제대 후에 ‘홍우회’라는 모임을 조직해서 지금까지 1년에 한번씩 정기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 복무 중에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빛과 소금’의 박성식 선배가 부대 내 연주실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을 하곤 했어요. 하루는 ‘비처럼 음악처럼’을 만들어 부르고 있더라고요. 들어보니 좋아서 제게 곡을 달라고 했더니 박 선배가 ‘사랑했어요’를 부른 김현식 씨에게 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박성식 씨가 제대한 뒤 제가 병장이 돼서 휴가를 나왔는데 거리에 온통 ‘비처럼 음악처럼’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아쉬웠지만, 아는 노래가 나오니 기분이 짜릿하더라고요."
- 무명생활은 어땠나요.
"25년 정도 했어요. 무명이 길어지니까 많이 지치더라고요. 앨범이 잘 안될 때마다 정말 힘들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가족, 동료들도 많이 괴로워했어요. 제가 괴로운 건 괜찮은데 가족이나 지인이 괴로워하는 건 못 보겠더라고요. 그게 심해지니 우울증까지 오더라고요. 그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산에 올랐어요.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오르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어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마다 묘하게도 이승훈, 추가열 씨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내 심리상태를 들여다보다가 전화를 하기라도 하듯 말이에요. 그리고 통화를 하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내려오면 이 분들과 만나서 이야길 나눴지요. 힘든 시절 이들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음악의 끈을 이어갔던 것 같아요. ‘My way’ 이후에 내 친구들 내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이 배가 된 것 같아요. 특히 아들, 딸에게 가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게끔 항상 마음을 다잡으면서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하고 있습니다."
- ‘My way’는 어떤 곡인가요.
"2005년 5집에 수록된 곡입니다. 5집 타이틀곡이 ‘너 때문에 살고 싶었어’인데요. 5집 수록곡 중 제일 아래 있던 ‘My way’가 생각지도 못하게 온라인상에서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 곡은 방송을 타기 위해 만든 노래가 아닙니다. 7080 라이브 카페가 호황을 이루던 당시 중년들이 들으면 공감하겠다 싶은 생각에 공연장에서 부를 요량으로 음반에 넣은 곡입니다.
대표곡이 5집 ‘My way’ 뿐이라 많은 분들이 신인가수로 보기도 합니다. 히트곡이 많지 않아서 겪는 에피소드죠.(웃음)"
- 대표곡 ‘My way’ 탄생 배경은?
"‘My way’ 작곡가는 홍진영 씨인데요. 재미난 일화가 있어요, 제가 대구에 살 때 제대하고 음악을 하겠다고 친구 몇 명과 무작정 미사리에 갔습니다. 이곳에서 우연히 홍진영 씨를 만난 겁니다. 홍진영씨는 우리에게 라이브 카페를 소개해주었어요. 매일 작업실에서 음악도 같이 했고요. 하루는 그 친구가 만든 20곡 정도를 들어봤는데 그다지 마음에 드는 곡이 없었어요. 그래서 작업실을 나서는데 홍진영씨가 노래 하나를 툭 던지는 거예요. 그 노래가 제게 크게 와 닿았어요. 바로 저에게 달라고 해서 받았습니다. 매일 연습하면서 가사를 제게 맞게 조금 수정한 뒤 발표한 곡이 ‘My way’입니다. 홍진영 씨에게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홍진영씨는 이후 이문세, 이승철, 박상민 씨 등 많은 가수에게 곡을 주는 유명 작곡가가 됐습니다."
- 최근에 신곡을 발표하셨다고요.
"‘멋져요 멋져’라는 곡을 리메이크한 곡을 발표했습니다. 이 노래는 10년 전에 ‘해바라기’ 이주호 선배가 발표한 곡이에요. 우연히 주호 선배와 통화를 하는데 통화 연결음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해바라기 노래 중에 이런 곡이 있는 줄 몰랐거든요. 처음 듣는데 아주 좋더라고요. 주호 선배한테 허락을 받아 포크가요로 편곡해 부르게 됐죠. 홍보를 많이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요즘 반응이 좋습니다. 요즘엔 ‘My way’ 2탄을 준비 중입니다."
- ‘가가형제’ 라는 프로젝트 앨범도 내셨죠.
"같이 복무했던 가수 이승훈, 추가열 씨와 함께 2011년 ‘가가형제’ 유닛을 결성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낸 적이 있어요. 이 앨범은 히트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기보다는 우정을 상징하는 앨범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지금도 다양한 기획을 하고 있어요. 공연도 많이 했고요.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의가형제’라는 드라마가 있었잖아요. 이것을 패러디해서 앞에 노래 가(歌)자를 붙여서 ‘가가형제’라고 지었습니다.
이승훈, 추가열 씨는 해군 홍보단 때 만나 20년 넘게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고요. 가족보다도 더 친하다고 할 사이입니다. 날마다 꼬박꼬박 전화통화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고 있습니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지금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인기를 얻겠지’라는 허황된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기회가 와도 잡을 수가 없어요. 저는 1~4집 앨범이 잘 안됐을 때도 주위 사람들이 뭐하냐고 물으면 항상 앨범 준비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제가 뱉은 말을 지키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언젠가 잘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가수를 꿈꾸는 모든 친구들이 마음의 준비보다는 실전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의 꿈이 뭔가요.
"제가 노래를 처음 시작할 때는 목표는 ‘타도 조용필’이었습니다, 건방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열정과 꿈이 가득했었죠. 40대가 훌쩍 넘어버리니까 나보다 노래를 잘하고 열정 많은 가수가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느 날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 꿈은 나처럼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아울러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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