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中·말레이 혼합문화 '페라나칸' 모습은 어땠을까

입력 : 2013-03-20 18:35:15 수정 : 2013-03-20 18:35:15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국립중앙박물관 5월까지 무료 특별전
15세기 종족간의 결혼으로 시작돼
서양세력 침투 후 유럽색깔 더해져
다양한 가치 존중하며 새 문화 형성
“오!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여. 창조주께서 당신께 축복을 내리셨군요.”

중국 공주 항리포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술탄 만수르 샤의 절절한 고백은 중국인의 말레이(말레이 반도와 주변 싱가포르 등을 포함한 섬들의 통칭) 진출을 알렸다. 15세기 술탄과 공주의 결혼 이후 20세기까지 중국인들의 말레이 진출이 이어졌고, 중국인 남성과 현지 여성의 결합은 ‘페라나칸’이라 불리는 혼합문화의 뿌리가 됐다.

동서양의 관문인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서양 열강이 16세기 이후 침투하면서 페라나칸 문화에는 유럽의 색깔이 더해졌다. 특히 영국령 식민지의 수도이자 물산의 집산지였던 19세기 싱가포르에서는 페라나칸의 ‘황금시대’가 열린다.

페라나칸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화재들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일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특별전을 개막했다. 김영나 박물관장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고 페라나칸을 평가했다. 페라나칸의 ‘아름다운 창조물’은 공존의 가치를 담고 있다. 

중국 강남식 주택을 선호하던 페라나칸은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은 여닫이문을 사용하는 등 건축에서도 취향의 변화를 보인다.(왼쪽 사진)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 사회를 주도한 페라나칸은 유럽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양복을 입고 훈장을 단 모습의 송옹시앙 초상화가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중국적 정체성 혼례, 페라나칸의 시작


혼합문화 페라나칸은 종족 간의 결혼에서 시작된다. 아랍인·인도인·유럽인 등 다양한 페라나칸 공동체가 형성되지만 중국인이 다수다. 그래서 혼례를 주제로 구성된 전시회 1·2부에서는 중국 문화의 영향이 뚜렷하다.

혼례의 상징적·공간적 중심인 신방은 중국의 전통을 따랐다. 상서로운 색깔로 여긴 붉은색·분홍색·금색 등을 주로 사용했고, 직물·도자기·가구 등에는 복을 기원하는 모란·봉황·나비·기린 등의 무늬가 새겨졌다. 중국식 외투와 고깔모자 등 신랑 신부의 예복에도 중국의 영향은 뚜렷하다. 하이라이트는 중국 전통 방식에 따라 조립된 신혼 부부 침대다. 아들 낳기를 기원하며 용띠 남자아이를 세 번 구르게 하는 ‘안층 의식’도 침대에서 치른다.

혼례가 중국 문화에만 지배된 것은 아니다. 신부가 신랑 집에 가져가는 ‘시레 세트’는 말레이 토착 문화의 단면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마약 성분이 있는 시레 잎을 씹는 관습이 있는데, 잎을 담는 용기가 시레 세트다. 공작을 수놓은 아일랜드풍 카펫도 신방에 깔렸다.

페라나칸 가옥에서 가신(家神), 조상신, 조왕신을 모시는 세 제단은 중국에서 유입된 효 사상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상을 추모하는 초상화를 걸기도 했다. 전시회에 소개된 초상화는 비단무역으로 큰 성공을 거둔 부부의 사연을 담고 있다.

혼합문화 페라나칸은 종족간 혼례에서 시작된다. 중국계가 페라나칸의 다수를 차지해 혼례 때 사용된 신부예복과 침대 등에는 중국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표현됐다.
◆유럽의 영향, ‘영국왕의 중국인’


중국계 페라나칸은 19세기 영국 식민지 아래서 동남아시아에서 퍼진 동포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다. 싱가포르 식민 정부에 참여해 근대화를 추진한 주체이기도 했다. 선조의 관습을 유지하면서도 ‘영국 왕의 중국인’을 자처했던 이들이 서구 문화에 밀착한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전시회 4부는 페라나칸에 미친 유럽의 영향을 살펴본다. ‘송옹시앙 초상’에는 서구화된 페라나칸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약간 치켜뜬 눈길에 자신만만함이 역력한 송옹시앙은 양복 차림에 별 모양의 대십자 훈장과 목걸이용 훈장을 달고 있다. 탁자 위에 성경을 그려 넣은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심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식 가구는 중국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초상화는 송옹시앙이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탄수빈 부부의 초상화’는 이탈리아 회사에서 모자이크로 제작한 것이다. 탄수빈은 타이를 맨 서구식 정장 차림이다. 서양 복장을 하고 초상화를 제작한 것은 페라나칸 엘리트들이 추구한 자아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건축에서는 19세기 중반 이후 중국 강남식 주택에서 서구적 형태의 연립주택이나 방갈로로 변화되는 모습이 포착된다. 가구·제단 등으로 중국적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핀투 파가르(여닫이문)’과 아르누보 양식의 타일에서 서구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승마·테니스 같은 유럽식 여가를 즐겼던 페라나칸의 모습이 반영된 사진과 트로피도 볼 수 있다.

이 외에 패션을 주제로 한 3부에서는 페라나칸 여성의 복식인 ‘사롱’과 ‘케바야’ 같은 말레이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정밀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 93개를 박아 넣은 별 모양의 브로치 ‘케로상 빈탕’은 화려한 동시에 정갈하다. 5부 공예미술에서는 페라나칸 여성들이 남긴 뛰어난 자수와 구슬 세공품, 분홍색이 두드러진 도자 세트가 눈길을 끈다. 전시회는 5월19일까지 진행되면 관람료는 무료다. (02)2077-9000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박보영 '상큼 발랄'
  • 박보영 '상큼 발랄'
  • 고윤정 '매력적인 미모'
  • 베이비돈크라이 이현 '인형 미모'
  • 올데이 프로젝트 애니 '눈부신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