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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 아버지는 金, 나는 詩에 꽂혔다

입력 : 2013-03-08 18:06:23 수정 : 2013-03-08 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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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시’라고는 도통 모르는 양반이었다.

평생을 황금만 쫓아다니다 생에 딱 한번 농짝만 한 금을 캐 보았을 뿐…. 그 금을 싸들고 빌딩 산다고 서울에 올라갔다가 고물상을 운영하는 친척한테 낚였다. 투자하면 몇 곱절의 이익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넘어가 한 푼도 못 만져보고 거금을 홀랑 날리고 말았으니….

그런 뒤에 아버지의 꿈은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절실할수록 허황된 길로 들어서기 쉽다. 아버지는 빈 굴만 파고 다니다 재기 한 번 못해 보고 돌아가셨다. 아버지 살아생전, 고향 집에 내려가면 나한테 다짜고짜로 묻는 말이 있었다.

“요새는 뭐 하냐?”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했다.

아버지가 황금에 꽂혔던 것처럼, 나는 시에 꽂혀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은 곧 “요새 시 쓰냐?” 하는 말로 들렸다. 뭐라도 하고 있을 때는 바로 어쩌고저쩌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는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해 우물쭈물 둘러대기에 바빴다. 아버지 앞에서 궁색하게 그러고 있자면 아득한 밑바닥부터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왜 아픈 데를 콕 지르는 거냐고?’

부아는 점점 나에게로 옮아가 ‘너 요즘 뭐 하냐? 한심하다!’ 하고 자괴감마저 들게 하였으니….

직사포로 던지는 아버지의 말에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마다 대답할 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는 없고 나만 남았는데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의 내가 나의 실존을 증명하는 말.

지금 시를 쓰고 있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며,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으면 화가가 아니며,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으면 언론인이 아니며, 지금 바르게 다스리고 있지 않으면 정치가가 아니다.

“요새는 뭐 하냐?”

나는 그 말을 스스로에게 물으며 뜨끔해하곤 한다.

이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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