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소임을 수행하는 보석 같은 판사도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재판 과정에서 성폭행 피해자를 세심하게 배려한 서울서부지방법원 김종호 판사에게 ‘디딤돌상’을 줬다고 한다.
세심한 배려는 재판 과정 곳곳에서 묻어난다. 김 판사는 성관계를 맺었는지 꼬치꼬치 묻는 변호인에게 “성관계는 피고인이 인정한 것 아닌가”라며 “주장이 다른 것만 확인하라”고 했다. 답하기 힘든 것을 캐묻는 변호인에게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재차 확인하지 마라”, “경찰 진술을 다시 묻지 마라”며 직접 제지하기도 했다. 흐느끼는 피해자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린 김 판사는 “자신을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픔을 잘 이겨내길 기원한다”고 말했다고 하니 따듯한 그의 말은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 됐을 법하다.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아빠랑 사귄 것 아니냐”고 다그친 검사, 집단성폭행 피해 여성을 상대로 가해자의 성기 크기를 집요하게 캐물은 경찰은 자신과 김 판사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공권력은 우월한 지위를 즐기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때 법치주의는 바로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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