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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 '묻어버린 아픔'의 주인공 김동환

입력 : 2013-02-15 14:00:29 수정 : 2013-02-15 14: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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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런 사랑 원하지 않아/ 바라만 봐도 괜히 그냥 좋은 그런 사랑이 나는 좋아"

1988년 ‘묻어버린 아픔’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 김동환.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멜로디를 듣다보면 ‘아 이 노래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라이브 카페 신청곡 순위에 이름을 올려놓는다는 그의 노래는 4050세대들에게 아련한 추억의 노래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총 5장의 앨범을 냈지만 ‘묻어버린 아픔’에 버금가는 곡이 나오지는 못했다. ‘첫 음반이 대박을 터뜨리면 그 다음 음반은 잘 되지 못한다’는 속설이 그에게도 적용된 탓일까. 앞으로는 대중과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뷔 이래로 한 번도 음악을 놓아본 적이 없다는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안산 선부동으로 찾아갔다. 그에게서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 못지 않게 불타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난해 하반기에는 공연을 많이 했어요. 1월이 되니까 공연이 별로 없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겠지만요. (웃음) 올해 싱글 앨범을 준비 중이에요. 녹음은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1988년에 ‘묻어버린 아픔’이 큰 인기를 모았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제 노래를 기억하고 좋아해주시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입니다. 지금도 라이브 카페에서 신청곡 순위에 오를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4050세대들게는 아련한 추억이 있는 곡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합니다. ‘묻어버린 아픔’ 이후 음악활동을 쉬지 않고 해왔고 앨범도 5장 이상 냈어요. 음악적인 것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대중과 멀어지게 된 것 같아요. 음악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고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파고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 ‘묻어버린 아픔’이 나오게 된 배경은. 

"1980년 초에 ‘신중현의 뮤직파워’라는 팀에서 리드보컬로 활동했어요. 팀 생활을 하면서 저 나름대로의 음악을 해보려고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많이 했어요. 당시 ‘신촌뮤직’ 장고홍 사장님이 제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셨어요.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음반을 한 장 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당시 이미 데모 테이프를 준비하고 있었을 시절이라서 그걸 드렸더니 조금 더 대중적인 음악을 원하더라고요. 제가 가져간 노래는 알려지기까지 홍보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저는 제 곡이 소중하다며 고집을 부렸죠. 그래서 음반 제작하는 시간이 지체됐어요. 그 사이에 신현빈이라는 매니저가 있었는데 이 분이 제 음반을 제작하고 싶어 했어요. 장고홍 씨 모르게 음반이 나오게 된 거죠. ‘묻어버린 아픔’은 제 곡이 아니에요. 이 노래는 제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작곡가가 노래하는 카페에 석 달 열흘을 오더니 어느 날 곡을 만들어 오셨어요. 부리나케 녹음을 하게 됐고요. 그래서 만들어진 1집이었는데 지금의 제 대표곡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웃음) 수도 없이 고민하면서 만든 제 곡들은 하나도 히트가 안됐죠."

- 앨범이 나오자마자 히트를 하셨나요.

"당시 라디오는 대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였어요. 라디오에 제 곡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묻어버린 아픔’은 보컬 위주로 만든 곡이에요. ‘묻어버린 아픔’은 2003년 MBC 드라마 ‘남자의 향기’ OST에 수록된 적이 있어요. 가수 이민영 씨가 리메이크해서 또 한 번 사랑을 받은 적이 있어요."

- 히트 후 달라진 점은.

"가장 큰 것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본다는 점이죠. 지금은 숱이 없지만 그땐 머리숱이 많고 장발이었어요. 텔레비전에 출연을 했으니까 ‘아 저 사람이네’하면서 많이 알아보셨어요. 한동안 바빴죠. 가수라는 것이 바쁜 것도 한 철이지 2~3년 지나니까 수그러들더라고요. 앨범은 냈지만 1집이 너무 강하다보니 이후 앨범은 생각보다 반응이 미지근했어요."

- 지금도 히트에 대한 갈증이 있나요.

"사실 예전에도 히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사실 히트를 하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니까 좋은 점도 분명 있어요. 좋은 환경에서 음악을 하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좋은 일이긴 하지만 히트가 목적이 아니고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지금도 답답한 것이 음악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데 공연할 공간이 없어요.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집에서 연습하는 것으로는 만족감이 없거든요. 무대 위에서 관객과 소통을 해야 마음속에 무언가가 채워지거든요. 이걸 채우지 못하면 사람이 이상해져요. 그럼 안 되잖아요."

- 성장기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서울 후암동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1.4후퇴 때 월남하셨고요. 저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지금 생각해도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어요. 형이나 누나들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를 다녔어요. 저는 취미가 영화, 음악 뭐 이런 거였어요."

-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제 형이 음악을 좋아했어요. 1960년대에는 오디오 있는 집이 별로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형이 대학생이 됐다고 오디오를 사주신거에요. 지금의 검정색 LP와는 다르게 LP판이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등 천연색이었어요. 형이 듣던 LP를 저도 많이 들었죠. 벤처스, 냇 킹 콜 음악을 귀동냥으로 많이 들었어요. 초등학생 시절 소풍 장기자랑에서 냇 킹 콜의 ‘Too Young‘이라는 곡을 불렀어요. 선생님께서 노래를 어떻게 아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형이 매일 듣던 곡인데 노래가 아주 좋아서 가사를 한글로 써달라고 해서 외우게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신기해하시더라고요. 아마 상으로 연필을 받았을 거예요. 형이 음악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듣다보니 가까워진 것 같아요. 특히 팝을 많이 들었어요."

-특히 좋아했던 음악은.

"제가 초등학교 때 들었던 음악 중에서 이미자 씨의 노래가 좋더라고요. 트로트 같지 않고 스탠더드한 팝처럼 느껴졌어요. 어린 나이에 듣기에도 간결하게 들려서 좋았습니다. ‘노래를 정말 잘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기타는 초등학교 때 배웠어요. 동네에 자전거 가게 형이 기타를 치는 거예요. 잘 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기하니까 가서 많이 봤어요. 본격적으로 치게 된 건 중학교 때입니다. 클래식 기타가 좋더라고요. 우연히 제 친구 중 한명이 클래식 기타를 연주할 줄 알았어요. 그 친구에게 기타를 배우게 됐죠. ‘로망스’, ‘이사도라’ 등을 배우면서 기타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기타를 배우면서 노래도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노래를 듣고 코드를 알 수 있겠더라고요. 음악을 듣고 코드를 따서 적었죠."

"악보에 대해 잘 모르던 때라 소절수와 코드를 알아내서 그냥 그렸어요.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데 음악을 깊이 있게 들어서 그런지 다 들리더라고요. 기타를 가르쳐준 친구와 훗날 듀엣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 기타는 언제 배우셨어요.

- 음악에서 ‘故 김현식의 음악이 엿보인다’는 말이 많던데.

"그런 말은 종종 들었어요. 故 김현식 씨는 대중적인 취향이죠. 대중이 사랑하는 노래가 진정한 대중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외면하면 그건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거죠. 현식 씨는 대중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죠. 저 같은 경우는 사랑을 많이 받진 않았지만 음악적으로 비슷한 면도 있었어요. ‘신촌블루스’를 통해 활동도 같이 했었고, 연습도 같이 하고 듀엣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  김동환이 본 故 김현식은 어떤 사람이었나.

"너무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당시 현식 씨의 음악성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합니다.
당시엔 저도 너무 어려서 그의 음악성을 판단할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 사람의 음악세계가 독보적이고 천재적이었던 것 같아요."

- ‘이브’는 어떤 곳이었나요.

"단순히 카페가 아닌 공연료를 받는 음악 감상실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소극장이었던 것 같네요. 의자의 방향이 모두 무대를 향하고 있었고 중앙에는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었으니까요. 무대 중심이었어요. ‘이브’에서 임성훈 씨, 이동원 씨, 신중현 씨, 대학생 보컬들, 일반인 밴드들이 공연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음악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무대였던 것 같아요.
종로 2가에 이종환의 ‘쉘브르’와 ‘이브’라는 라이브카페가 있었어요. 당시 양대 산맥이었죠. 저는 주로 ‘이브’에서 활동을 했는데 쉘브르는 통기타 위주였고, 이브는 신중현 씨를 주축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공연했어요. 당시 대학생 보컬들은 대부분 거쳐 갔을 겁니다."

- 요즘 음악계를 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요즘엔 고등학교나 대학에 실용음악과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들이 설 무대가 부족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이 모두 가수가 될 순 없잖아요. 요즘엔 진지한 음악클럽이 없어요. 이점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이 사회에 나와서 어디서 노래를 하겠어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정말 많잖아요.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아서 가수가 되는 사람은 몇 십 만명 중에 한명 꼴이잖아요. 나머지는 오디션에서 낙방했다고 해서 음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연습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에요. 학과를 만드는 것보다 음악클럽을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 같아요."

- 그동안 앨범 활동은 어떻게 하셨나요.

"1~3집 경우는 소속사와의 계약조건으로 한 것이고, 3집 이후에는 제가 곡을 쓰고 편곡을 했어요. 제가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걸 좋아하니까 신중현 씨, 엄인호 씨, 이정선 씨, 김목경 씨처럼 싱어송 라이터이면서 연주가 가능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에 소속돼 있으면 이런 체제가 불가능하잖아요. 제가 직접 연주하고 공연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싱글앨범을 만들고 있는데 제 팀이 연주하고 제가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 음악적으로 변신하고 싶은 생각은.

"지금 현재 돌아가는 유행에 발맞춰 가지 못하면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세대에 너무 어긋나지 않은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운동을 안 하면 무대에 서는 것이 힘들어서 꾸준히 하고 있어요. 자전거를 많이 타고 있어요.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가 없어요."

- 장르를 바꾸는 가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대가 원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좋죠. 성공을 위해서 음악적 틀을 바꾸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얼마든지 다른 공연은 할 수 있지만 정체성까지 불분명하게 변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원래 하던 음악을 버리고 갑자기 다른 장르를 하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장르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건 대중을 위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 올해 바람이 있다면.

"올해는 녹음을 잘해서 방송으로 연결돼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져서 대중에게 제 곡을 알리고 싶어요. 대중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웃음) 제2의 ‘묻어버린 아픔’ 같은 곡이 나와서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요."

‘이브’에서  故 김현식을 처음 만났어요

김동환은 밴드생활을 오래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가수다. 1집 ‘묻어버린 아픔’으로 데뷔하기 전, 종로 2가에 위치한 ‘이브’라는 라이브 카페에서 故 김현식을 처음 봤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 김현식이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노래를 잘 하길래 유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이후 친구의 소개로 그를 알게 됐고 음악적인 코드가 잘 맞아서 바로 친해졌다고 한다. 김동환은 “현식 씨를 처음 봤을 때, 제가 20대 초반, 현식 씨는 10대 후반이었어요. 음악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도 비슷해서 처음부터 말이 잘 통하더라고요. 앞가르마에 장발이었던 현식 씨와 같이 음악 들으러 많이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라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김동환은 김현식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여행을 함께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단 둘이 고속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여행을 가서 온천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현식 씨의 병색 짙은 모습을 보고 ‘안 좋은 소식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식 씨 본인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삶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하고 노력했으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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