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침(針)’이란 것을 처음 접한 것은 영화 ‘해변으로 가다’를 촬영할 때였다. 촬영지 이동으로 숙소를 옮기던 중 나는 그만 젖은 계단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통증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맡은 배역이 주인공이라 한시라도 빨리 병원 치료를 받아 촬영에 차질이 없어야 했다. 그날 따라 일요일이었지만 경남 해안지방에서 운 좋게 한의원 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꼬리뼈가 약간 휘었기에 침을 엉덩이에 정말 많이 맞았다. 20대 초반이라 금방 회복했고, 어느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요즘 나는 다시 침을 맞고 있다. 꼭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다. 쉬고 싶은 마음에 찾아낸 방법 중 하나다. 가슴이 답답하면 모두가 그렇듯 나도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눈앞에 일을 다 멈추고 훌쩍 여행을 간다는 게 어디 생각처럼 쉬울까. 따라서 나는 자가치유(self-healing) 방법으로 침을 찾았다. 생각하기에 따라 좀 유별날 수도 있겠지만, 나름 지친 나를 위로하는 최소한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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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의 ‘침’. |
나는 정작 큰 위험에 무감각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서 만난 한인교포 친구는 우리의 남북한 대치 상황이 많이 걱정된다고 하였다. 난 의아했다.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도발한다는 보도에도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러려니 했다. “한국 사람만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어찌 보면 참기 힘든 일을 버텨내기 위해 일부러 둔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스트레스가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원자폭탄을 맞아 패전했고, 항상 지진으로 불안했기에 스키조프레닉(Schizophrenic·정신분열증)한 팝아트를 만들어 냈다.
미국의 팝아트가 들어왔을 때, 일본 미술계는 그 정서적 기반이 이미 다져진 상태였다. 일본 전통의 무상(無常)이라는 개념은 현대 팝아트의 비연속적이고 일시적인 특징과도 잘 맞았다. 한 예로, 그들은 만화를 예술에 도입했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의 시대정신을 무시한 채 일본풍 만화를 좇아가는 것은 왠지 남의 다리를 긁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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