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만주의 혹독한 겨울철을 조선혁명군 장교 출신 계기화는 회고록에서 생생히 전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고산준령에서 산짐승과 더불어, 1937년의 봄을 맞은 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걸린 움직이는 해골들은 전원 손발이 동상이다. 아래로는 압록강의 성수(聖水)가 흐르고 눈앞에 손에 잡힐 듯 조국의 연봉들이 손짓하는 듯이 보이건만/ 다 원수의 말발굽에 짓눌려 죽은 듯하다. 아- 누구를 위한 속죄양이냐, 동포는 아는지?”
1929년 9월부터 1938년 말까지 10여년간 끈질기게 일본군과 싸웠던 최후의 독자적 독립운동 조직이 있었다. 바로 조선혁명군 독립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만주 독립군의 역사를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본명 양서봉)의 전기가 중국인 학자 조문기(曹文奇)의 집필로 우리보다 훨씬 먼저 출판되었다. ‘압록강변의 항일명장 양세봉’(요녕인민출판사, 1990)이다. 한국에서는 뒤늦은 2007년에야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이란 번역본이 나왔다.
1935년 중한항일동맹회를 조직해 중국의용군과 연합하여 일제와 싸웠던 조선혁명군 제1사 사령관 한검추(본명 최석용)는 통한의 이야기를 남겼다. “남만주 독립운동의 주요 기록과 상해임시정부 관련 문서들을 싣고 다녔는데, 작년(1936년) 하루하(下漏河) 격전 시에 만부득이 태워버리고 이제는 죽으면서도 후세에 남길 기록 한 장 없으니 비적 집단과 다를 게 무엇이오?”라고 한탄했다.
자신들의 자존심과 정통성, 자부심의 상징이었던 문서기록의 중요성을 깊이 일깨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당사자들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탄압했던 일제 측 기록만 많이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 일본 사람들이 정리한 자료집도 많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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