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정부 출범 시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고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한 원칙에 입각해서 실시했다”고 했다. “법과 원칙에 맞는 사면을 위해 진일보한 절차를 거쳤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면받은 인사들 면면은 이 대통령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최 전 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이 대통령 최측근으로 권력형 비리로 법의 심판을 받은 인물이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법과 원칙에 맞는 일이라니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면받은 것도 부적절하다. 두 사람이 연루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사건이다. ‘측근 구하기’용 사면권 남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용산참사 관련 철거민 5명을 포함시킨 것은 성격이 다르지만 위험한 선택으로 역시 찬성하기 힘들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한 것은 억울한 피해를 막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법치주의나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그런 만큼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회통합 같은 명분을 내세워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 측근이나 경제인들을 무분별하게 사면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공공의 안녕을 지키는 형법은 번번이 사문화됐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고 공약했고 어제 사면에도 비판적 반응을 보였다. 여야도 마찬가지였다. 말만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청와대를 향해 손가락질만 할 때가 아니다.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 사면권 오남용을 막을 법제적 장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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