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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 '밤에 떠난 여인'의 가수 하남석

입력 : 2013-01-27 14:23:30 수정 : 2013-01-27 14: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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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음악의 1세대로 ‘가요 톱10’ 석권
"절친 김정호 노래비 세워 음악혼 기리고 싶어"

하남석 공연모습, best of best 앨범
‘포크음악의 1세대’ 하남석을 기억하는가. 7080세대치고 가수 하남석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1974년 ‘밤에 떠난 여인’으로 ‘가요 톱10’을 석권한 하남석. 자그마한 체구에서 열정적으로 토해내는 애절한 창법, 이별하는 여인의 눈물이 사뭇 젖어 있는 가사는 아직도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환갑을 훌쩍 넘긴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언젠가 미사리 카페를 지나다 그의 이름을 보면서 ‘여기에서 노래하고 있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그를 수소문했더니 용인 동백지구에 살고 있단다.

“먼 길 오시느라 헤매지는 않았나요.” 그가 세월이 비껴간 듯 젊어 보이는 외모로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앳돼 보이기까지 했다. 헝클어진 듯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과 반짝이는 눈빛에서 왠지 모를 음악적 열정이 느껴졌다. 

하남석을 가리켜 흔히 ‘꿈꾸는 뮤지션’이라고 한다. 아마도 과거 히트곡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꿈꾸기 때문에 붙은 칭호이리라. 그의 최대 히트곡 ‘밤에 떠난 여인’을 불러줄 것을 청했더니 “요즘엔 잘 안 부르는 노래인데…” 하면서 기타를 꺼내들었다.

‘하얀 손을 흔들며 입가에는 예쁜 미소 짓지만/ 커다란 검은 눈에 가득 고인 눈물 보았네./ 차창 가에 힘없이 기대어 나의 손을 잡으며/ 안녕이란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서 우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 기약도 없는 이별/그녀의 마지막 남긴 말/ 내 맘에 내 몸에 봄 오면.’

그를 만나기 전에 음악 전문사이트에서 미리 들어둔 노래건만, 직접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내 음악에는 내 꿈과 인생이 담겨 있죠. 그러면서도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멜로디를 찾기 위해 애써 봅니다.” 먼 미래를 기대하는 소년 같은 감성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느낀 것은 그가 이제야 비로소 성숙한 음악을 완성시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청바지 블루스’는 그의 표현대로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노래로 보였다. 방랑에서 돌아와 삶의 순수와 여유를 만끽하고 사는 자연인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다.

― 올 초인가 앨범을 냈다고 들었는데요. 

"정확히는 지난해 12월 앨범을 냈어요. 과거 히트곡에 신곡 2곡을 넣어서 총 15트랙으로 꾸며 ‘BEST OF BEST’ 앨범을 만들었지요. 가수란 게 대개 인기가 시들해지면 새 앨범 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만들어 봐야 잘 팔리지도 않으니까요. 남들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웃음), 전 그래도 꾸준히 앨범을 낸 편이에요. 지금까지 12집을 냈으니까. 

작년에 낸 12집은 2010년에 낸 앨범에 담긴 13곡에 신곡 2곡을 넣었는데 이중 두 곡은 나름 의미가 있는 노래예요."

― 어떤 노래인지.

"언젠가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데 한 팬이 술김에 한마디 하는 겁니다. 
‘하남석 좋아하는 팬인데, 맨날 사랑타령만 하지 말고, 우리 민족에 대한 멋진 노래 하나 불러보소.’
언뜻 들으면 무례하고, 화가 날 수 있는 발언인데, 기분이 이상하게 짠 한 거예요. 그날 밤 내내 그 양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더라고요. 그래서 ‘싱어송라이터 구자형 씨한테 노랫말을 부탁해 곡을 붙였습니다. 그 노래가 ‘그날을 기다리며’입니다. 들어보실래요.

‘백두산아 한라산아 우리는/ 우리는 왜 서로 하나가 될 수가 없나/ 누가 나에게 말을 해 다오.’

이 노래에서는 정제된 피눈물 같은 절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 조국 통일에 삶을 바친 이들의 순결한 눈동자, 통일의 꿈에 꿈틀대는 심장, 파도치는 위대한 통일의 꿈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지요."

하남석 공연모습, best of best 앨범
―다른 한 곡도 궁금하네요.

"‘청바지 블루스’입니다. 이른바 청바지 찬가이자 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날의 사랑과 낭만, 음악과 여행을 함께 해 온 찢어지고 빛바랜 청바지, 하지만 빛이 바랠수록 더 멋지고 설레는 청바지를 노래했는데 이 노래 역시 구자형 씨와 공동 작사했고, 제가 곡을 붙였습니다.

‘청바지…’는 내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매우 중요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벅터벅 걷는 방랑의 아름다움,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드러나는 맨살의 순수함과 도전, 여기에서 얻어지는 여유는 사실 내 삶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청바지 블루스’에서 음악적 원숙미를 드러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어쩌면 새로운 시작인 셈이죠. 우리 민요에 ‘달 넘세’라고 있어요. 하늘 꼭대기의 달도 넘어갈 수 있다는 내용인데, 원숙하다고 하는 건 지상의 모든 고통과 비극,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대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조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작년까지는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하다가, 요즘에는 산사음악회 등에서 간간히 공연하곤 합니다. 세시봉 바람 이후 TV에서 출연 요청이 와서 가끔 출연도 합니다. 가수는 평생 음악을 놓을 수 없어요. 그래서 꾸준히 활동을 합니다. 한결같은 음악활동의 결실이 작년에 낸 12집 앨범인 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담양에 절친한 가수였던 고 김정호의 노래비나 동상을 세우려는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가수 김정호 씨와 어떤 관계였나요.

"김정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1985년 겨울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같이 음악을 했어요. 알다시피 김정호는 참으로 좋은 노래를 많이 냈잖아요. ‘이름 모를 소녀’ ‘하얀 나비’ ‘빗속을 둘이서’ ‘나를 두고’ ‘님’ 등 히트곡도 많고. 듀엣 ‘사월과 오월’ 멤버로 데뷔했다가 1973년 솔로로 나서 인기를 끌다가 34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시처럼 맑은 가사를 창백한 표정으로 애조 어린 목소리로 불렀어요. 때론 읊조리듯, 때론 절규하듯 했죠.

김정호가 대중에게 잊히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에 김원중, 소리새, 신성철 등과 함께 전남 담양에 노래비 혹은 동상을 세워 그의 음악혼을 기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담양군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몇 차례 추모 공연과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그의 고향은 광주이지만 담양에서 공연을 하게 된 이유는 ‘담양소리’의 첫 문을 연 명창 박동실의 외손자이기 때문이에요. 외갓집이 소리를 하는 집안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살리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앞으로 해마다 1회 공연할 예정인데, 포크 음악의 보급을 위해 더 열심히 공연할 생각입니다."

― ‘밤에 떠난 여인’이 나오게 된 얘기 좀 들려주시죠.

"기타 좋아하고 음악 사랑하는 건 타고 났어요. 하지만 가수로 살 생각을 하진 않았지요. 그래서 미래를 위한답시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팔자인지 대학에 입학했더니 외려 음악을 할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던 중 당시 굉장히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노래하던 형이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그 빈자리에서 제가 노래하게 됐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라 긴장의 연속이었죠. 한 달이 지났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월급도 인상되고. 그 후로는 일취월장이었어요. 당시 내로라하던 통기타 가수들이 출연하던 명동의 어느 유명한 카페 무대에 서게 되었고, 얼마 뒤 TBC 라디오 DJ가 되었습니다. 카페 공연을 본 어느 작곡가가 추천한 거예요. 탄탄대로를 달렸죠. 프로그램 인기가 날로 더해지면서 마침내 지인의 추천으로 앨범을 내고 가수가 된 겁니다. 그 앨범이 바로 74년에 발매한 ‘밤에 떠난 여인’이었어요. ‘가요 톱10’ 등 당시 인기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죠. 참으로 행운이 한꺼번에 몰려들더라고요."

― 가수 생활을 하는 동안 특히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집까지 찾아오는 열성 팬이 있었어요. 여성이었는데 날마다 찾아와 만나달라고 애원했어요. 명동에서 딱 한 번 만났는데 그 후 과하다 싶을 정도로 편지를 보내더라고요. 거의 매일 집까지 찾아오고요. 너무 불편해서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에 멀리했는데 얼마 뒤 그분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그 팬이 자살했다는 소식이었어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직까지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았어요. 한참 세월이 흘러 미사리에서 공연할 때 한 여성 팬이 찾아와 과거에 많이 좋아했다고 했는데 차마 그 팬이었는지 물어보지는 못했어요. 목숨을 끊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아주 가슴 아픈 일이지요."

― 끝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제까지 음악을 계속할지 모르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하고 싶거든요.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곡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나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더라도 팬들께서 들어주고 응원해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아이돌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요즘 아이돌그룹은 지나치게 획일적입니다. 음악적 개성이 없이 비슷비슷해요. 자기 본연의 개성과 주체성 있는 음악을 하면 대중에게 좀 더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자기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음악을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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