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건 어떨까? 유명한 전래 동화 ‘백설공주’의 새엄마는 몇 천년 동안이나 악역을 맡아왔다. 누구도 계모의 심리나 내면 혹은 과거사 따위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게임 속 세계 역시 그렇다. 고전적 8비트 게임 ‘다 고쳐 펠릭스’의 악당 랄프의 삶도 다를 바 없다. 그는 펠릭스가 고칠 만한 것을 제공한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랄프는 깨부수는 게 일이다. 어떤 세계라 하더라도 깨부수는 게 고치는 것보다 환대받을 리는 없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대개 그렇지만 ‘주먹왕 랄프’는 완벽한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우선 고전적 8비트 게임을 통해 자극하는 아날로그의 정서가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아날로그 정서는 단순히 회고적인 과거의 추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주먹왕 랄프’가 자극하는 아날로그 정서는 바로 겉보기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공감이다.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지만 제 자리에서 자기 몫을 묵묵히 해나갈 때,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전언도 그렇다.

‘주먹왕 랄프’는 이 유아기적 물활론을 세련화해 게임기가 가득한 오락실을 꿈의 무대로 재해석해낸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코드나 케이블을 통해 정거장에 모이고 그곳에서 각자 자신의 게임기로 들어간다는 설정이나 인기가 많아진 게임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질병을 앓는 게임기가 생긴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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