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에는 넓은 캠퍼스에 펼쳐진 건물들을 오가기 위한 셔틀버스가 26대 있다. 이씨는 이 버스로 오전 7시부터 12시간 동안, 때로는 자정부터 오전 3시까지도 학생들을 실어날랐다.
그런 만큼 추억과 일화도 적지 않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서울대생들의 연기 자욱한 시위와 신군부의 계엄령에 따른 학교 봉쇄도 고스란히 목격했다. 대학원생과 신출내기 교수로 얼굴을 익혔던 인물들이 어느새 유명인이 되기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김난도 교수는 학생시절부터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전의 서울대 학생들은 ‘공부벌레’ 같고 수수하고 소탈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자유분방하고 많이 세련됐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내가 운전한 차를 탔던 학생이 장관도 되고, 교수도 된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했다”면서 “한평생 이곳에서 일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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