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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컨트리송 여가수 패티 페이지 별세

입력 : 2013-01-03 15:29:23 수정 : 2013-01-03 15: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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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왈츠’ 등 부드럽고 달콤한 음색의 왈츠풍 발라드로 인기를 끌었던 미국 여가수 패티 페이지(85)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AP통신 등 외신은 3일(현지시간) 페이지가 새해 첫날 캘리포니아 엔시니타스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페이지는 지난해 팬들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신께서 내게 허락한 목소리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느낌은 들지만 신체적 손상으로 수년간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래에 어찌될지는 신만이 알 것”이라며 병세가 위중한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페이지는 1927년 오클라호마주 클레어모어에서 11남매 중 열번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었다가 1946년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명인 클라라 앤 파울러 대신에 패티 페이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어려서는 수줍음이 많았지만 이후 열정적인 창법을 구사해 ‘노래하는 광란’(The Singing Rage)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페이지가 부른 불후의 명곡은 ‘테네시 왈츠’와 ‘체인징 파트너’ ‘마킹버드 힐’ 등이었다. 1951년에 발표된 테네시 왈츠는 테네시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며 1956년에는 이곳의 주가(州歌)로 공식 채택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판매된 이 곡의 음반만 천만장이 넘는다. 50만장 이상 판매된 ‘골드 레코드’만 15장에 이르는 등 1억장 넘는 음반이 팔렸다.

생전 페이지의 활동 영역은 폭넓었다. 영화와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미 3대 방송사인 NBC·ABC·CBS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프로그램을 진행한 최초의 가수이기도 했다. 1991년 그래미 전통 팝 가수상을 받았으며 다음달 9일 열리는 그래미 시상식의 평생 공로상 수장자로 확정된 상태였다.

가수 패티 김이 “가수 페티 페이지처럼 노래를 잘하고 싶다”며 예명에 ‘패티’라는 이름을 빌려올 정도로 페이지는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1963년 방한해 서울 대한극장에서 첫 한국 공연을 가졌으며, 1979년과 1989년에도 한국을 찾았다. 페이지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했으며, 유족으로는 1남 2녀가 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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