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빠진 마오쩌둥 문화혁명으로 부활시켜
대륙의 여제 꿈꾸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칭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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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테릴 지음/양현수 옮김/교양인/3만2000원 |
“장칭은 아주 사악한 여자야. 말로 묘사하기 힘들 정도로 사악하지.”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은 권력 쟁탈의 경쟁자 장칭(江靑·1914∼91)을 아주 사악하다고 했다. 마오쩌둥의 네 번째 부인이자 공산혁명의 동지로, 피의 숙청을 부른 문화혁명을 기획하고 최고 권력을 추구했던 장칭. 젊은 시절 불같이 한 남자를 사랑했고 인기 연극배우로 살았던 고혹적인 여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판 ‘측천무후’가 되려다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나서야 뒤늦게 권력의 허망함을 절절히 체득하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센터 연구원 로스 테릴이 쓴 ‘장칭-정치적 마녀의 초상’은 현대 중국공산당의 권력 쟁탈전을 장칭이란 비범한 여인을 통해 조명한다. 저자는 일반의 인식과는 사뭇 다른 각도에서 그녀를 묘사한다. ‘영웅 마오쩌둥을 타락시킨 창녀’ ‘사악한 여자’ 등 오명을 벗겨내고 본 모습을 사실감 있게 복원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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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장칭의 모습. |
1937년 여름 상하이가 일제 침공으로 함락되면서 상하이 예술가들은 대부분 국민당 정부를 따라 난징으로 갔으나 장칭은 홀로 옌안행을 택한다. 마오쩌둥이 국민당군에 쫓겨 옌안에 은거하자 공산혁명에 나선 젊은이들이 옌안으로 모여들었는데 장칭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상하이라는 화려한 세계를 뒤로 하고 공산혁명의 중심지 옌안에 온 영화배우 장칭은 마오쩌둥의 눈에 들었고, 둘은 1939년 결혼한다. 당시 장칭은 결혼의 대가로 “향후 30년간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굴욕적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마오쩌둥에게 그녀는 혁명동지가 아니라 그저 외로움을 달래주는 여인일 뿐이었다.
1960년대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 실패 책임을 묻는 류사오치·덩샤오핑 등 혁명 2세대의 비판에 몰린다. 마오쩌둥은 아내 장칭 등을 중심으로 최측근 그룹을 만들어 반격의 기회를 엿본다. 그들은 문화혁명을 기획해 불을 지폈으며, 붉은 띠를 두른 청소년(홍위병)들을 동원해 지주 등 상층 계급 출신들을 배척·탄압하도록 부추겼다. 마오쩌둥은 신적 존재로 떠받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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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사후인 1980년 반역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칭이 교도관들에 이끌려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
장칭과 구카이라이 둘 다 권력자의 아내였지만 막판은 달랐다. 장칭은 “나는 마오쩌둥의 개였다”고 남편을 비난한 반면 구카이라이는 모든 죄를 뒤집어 썼다. 이 책은 거의 모든 정치적 과정이 베일에 싸인 공산당의 메커니즘을 사실감 있게 전해준다. 저자는 “중국 지도부는 지금도 정치행위의 작동 과정을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철저히 숨기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조치를 취한다”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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