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탈린은 1953년 3월 6·25전쟁 중에 사망했다. 스탈린의 막후 조종으로 전쟁에 말려든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그가 죽자 4개월 뒤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스탈린의 후임 흐루쇼프는 곧바로 ‘스탈린 격하’ 운동을 전개했다. 스탈린의 죽음과 함께 즐기던 숙청과 전쟁 문화도 사라졌다. 그의 운명은 자신의 말대로 종결됐다.
마오쩌둥도 숙청 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혁(文革)과 홍위병, 하방(下放)은 정적 청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마오의 술어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딸이 성을 이(李)씨로 바꿨겠는가.
북한의 김일성도 만만찮다. 공산당 선배들을 닮아서인지 그 역시 피의 숙청으로 정권을 다졌다. 6·25전쟁 이후 권력 강화를 위해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갑산파를 깡그리 없애버렸다. 살아남은 자는 오로지 김일성파뿐이었다. 총살, 탄광 노동자, 특별수용소 감금은 전형적인 정적 제거 수법이었다.
작년 12월 죽은 김정일의 숙청사도 화려하다. 최측근 이제강 노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이 펴낸 책 ‘혁명대오의 순결성을 강화해 나가시는 나날에’에 낱낱이 기록돼 있다.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 등 불귀의 객이 된 인간이 수십명이다. 아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도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지난 7월 리영호 군총참모장을 ‘반당·반혁명 분자’로 전격 제거하는 등 연일 피바람이 분다.
숙청은 숙청을 부른다. 스탈린, 김일성이 다 그랬다. 김일성은 말년에 김정일과 권력투쟁에 밀려 1994년 7월 묘향산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작년 12월에 죽은 김정일의 사망 사유도 북한 발표와는 달리 의혹투성이다. 이제 그 아들이 숙청의 대열에 들어섰다. 안쓰럽다. ‘숙청을 주도한 자 숙청으로 끝난다’는 진리를 깨달았으면 한다.
조민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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