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니아들에게 가장 궁금한 게 무엇일까. 다음달 나온다는 아이폰 보다 더 궁금한 것은 새로 나올 차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항상 자동차 스파이샷에 관한 이슈가 뜨겁다. 국내에서도 ‘곧’ 출시될 것이라며 등장했던 K9의 스파이샷이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다. 자동차 업계가 끊임없이 신차를 내놓는 만큼 자동차 스파이샷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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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자동차 스파이샷을 찍어 유명한 포토그래퍼 ‘브랜다 프리디’를 지난 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났다. /사진=이다일 기자 |
▲ 데스밸리의 스파이…첫 시작은?
자동차 스파이샷에 워터마크로 항상 찍혀있는 유명인사 ‘브랜다 프리디’를 만났다. 의외의 첫인상을 가졌다. 전 세계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스파이(?) 역할을 자처하는 이가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였다. 아이들이 옆에 없을 뿐 평범한 외모에 넉넉한 인상이 영락없는 아줌마다. 활달한 성격의 브랜다는 우리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브랜다는 부업으로 사진을 찍었다. 1992년 보석상에서 일하며 웨딩 사진을 비롯한 상업 사진을 찍던 그녀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동네 식료품점에 프로토타입의 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당시에는 그 차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음날 이 사진을 ‘오토모빌 매거진’에 보냈고 그 해 11월호 표지에 그 사진이 실렸다. 1994년 출시 예정인 포드 머스탱이었다.
우연히 사진을 찍은 이유는 동네가 외진 곳이어서다. 당시 피닉스 교외의 신개발지역에 살았는데 인적이 드물고 도로만 개설된 곳이라 테스트 중인 차들이 찾아온 것. 이후 4대의 포드 프로토타입 차를 더 찍었고 업계에는 브랜다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의 한 잡지사에서 그녀에게 데스밸리에서 스파이샷을 찍어줄 수 있겠냐고 의뢰했고 그 일로 브랜다는 자동차 업계의 스파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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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다 프리디가 찍은 사진이 잡지 표지로 등장했다. /사진제공=브랜다 프리디 |
브랜다가 스파이샷을 전문적으로 찍기 시작하면서 온 가족이 데스밸리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이전까지는 데스밸리에 가 본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다”며 “미 서부지역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임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데스밸리의 척박한 환경이 자동차 스파이샷에는 필수 요소였다. 데스밸리는 여름철에 섭씨 60도에 이르는 폭염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름도 데스밸리다. 생명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불린다. 브랜다는 스파이샷을 찍는 일은 장소와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데스밸리에서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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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데스밸리는 한 여름 기온이 섭씨 60도 가까이 오른다. 덕분에 혹서기 조건을 테스트 하려는 자동차 업체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사진제공=브랜다프리디 |
스파이샷을 찍는 것은 위험하고 불법적인 일이 아니냐는 질문에 브랜다는 색다른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녀는 “한번은 미국산 풀사이즈 픽업 트럭을 만났다. 엔진룸을 보고 싶었지만 남의 차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주차된 곳 바닥에 부동액을 조금 뿌려두었다. 차에는 전혀 손대지 않다. 엔지니어가 나오자 ‘차에서 뭔가 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엔지니어는 확인을 위해 보닛을 열고 시동을 걸러 운전석으로 갔다. 그 사이 사진을 찍었고 엔지니어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무용담을 늘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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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데스밸리에서 브랜다 프리디에게 포착된 현대자동차 엔지니어들. 이 차는 출시 전의 제네시스 쿠페다. /사진제공=브랜다프리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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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데스밸리에서 찍힌 기아차 쏘울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사진제공=브랜다프리디 |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스파이샷을 찍어오니 그녀와 자동차 테스트 드라이버는 이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한국차도 잘 아느냐는 질문에 브랜다는 현대차 테스트 드라이버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이야기를 하자면 데스밸리에서 만나는 테스트 엔지니어 가운데 현대차 엔지니어들이 최고다. 그들은 나를 만나면 물이나 게토레이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괜찮은지 꼭 물어본다”고 말했다. 반면, 불친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전 모래에 차를 세웠다가 바퀴가 빠졌는데 포르쉐 엔지니어가 지나가다가 ‘오∼브랜다? 하하’ 하더니 웃으며 사라져버렸다. 매너 좋은 현대차 엔지니어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브랜다는 테스트 드라이버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주고 있다. 그녀가 직접 만든 팔찌다. 팔찌에는 ‘주의, 스파이 출몰지역 사진촬영 금지, 예외없음’이라고 적혀있다. 브랜다는 “데스밸리는 주로 관광객들이 가는 지역이므로 카메라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스파이샷을 찍힐 가능성이 크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어 큰 마찰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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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 벤츠의 테스트 엔지니어 /사진제공=브랜다프리디 |
브랜다는 지금 폴크스바겐 제타 왜건 TDI를 타고 있다. 미국에서 보기 드문 디젤 승용차다. 15개월 동안 주행한 거리가 무려 4만8000마일(7만5000㎞)이다. 어지간한 택시보다 주행거리가 많다. 그녀는 특이한 이유로 이 차를 좋아한다. 디젤엔진이라 연비가 좋고 데스밸리의 뜨거운 사막에 세워놓고 공회전을 해도 과열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촬영을 위해 데스밸리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많아서 그녀에게는 중요한 요소다. 과거에 스바루의 4륜 구동을 탔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며 폴크스바겐 제타도 유럽에 있는 4륜구동 모델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 스파이샷 전문가, 어떤 카메라 쓸까?
“스파이샷을 찍히지 않으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위장막을 씌우지 않는 것입니다.” 브랜다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했다.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 위장막을 씌우고 특수 스티커를 붙인 모습이 오히려 눈에 더 띈다는 설명이다. 그녀는 “공공장소에 나온 차가 눈에 띄는 형태로 테스트중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 게다가 휴대폰에도 카메라가 있으니 누구나 찍을 수 있다”며 “차를 만지거나 주행을 방해해서는 절대 안되지만 사진을 찍는 것은 자유”라고 말했다.
스파이샷을 위한 카메라로 브랜다는 작고 저렴한 카메라들을 추천했다. 그녀는 캐논 50D정도의 작은 DSLR을 사용한다며 렌즈 역시 15년 정도 된 35∼350㎜ 줌렌즈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똑딱이 카메라로도 충분하지만 데스밸리의 뜨거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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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다 프리디는 각국 언어로 ‘스파이’라고 쓴 명함을 갖고 있다. /사진=이다일 기자 |
브랜다는 현대·기아차를 아는 만큼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톱기어코리아에 출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톱기어코리아를 봤는데 한국어를 몰라도 유쾌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자동차 프로그램 중 하나만 출연할 수 있다면 톱기어코리아에 나가고 싶다. 그렇게 신나고 열정적인 자동차프로그램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희망을 밝혔다.

▲ 브랜다 프리디(Brenda Priddy)
미국 데스밸리에서 500마일 떨어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며 자동차 스파이샷을 전문적으로 찍는 포토그래퍼. 1992년 우연히 일을 시작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샷 전문가가 됐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직업적으로 스파이샷을 찍는 사람은 약 20명 정도이며 이 가운데 5명 정도가 북미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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