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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7> 체리의 고장, 이란 찰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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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02 00:49:24 수정 : 2012-11-02 00: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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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 속 풍요를 만나다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지형 덕에 기후와 토양이 좋아
과일과 채소, 생선 넘쳐나 체리는 한국으로
수출도 많이 되고 있다
나는 예쁜 스티커와 함께 1개월 체류연장 허가증이 붙어 있는 여권을 찾아 테헤란을 떠난다. 산과 바다가 있는 이란의 북쪽으로 향한다. 카스피해가 있는 찰루스로 가기 위해서다. 찰루스는 테헤란에서 4시간 거리다. 사막만 있을 것 같은 이란이 이런 높은 산과 물을 숨겨 놓았다니! 버스로 산을 넘어가야만 하는데, 오랜만에 보는 굽이굽이 먼 산 풍경은 좋지만 뱅뱅 도는 도로 때문에 속은 안 좋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가보다.

산 정상에 오르니 풍경의 절정은 커다란 호수다. 물이 귀한 이란에서는 호수에 댐을 세워 물을 공급한다. 찰루스는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신선한 바다 바람의 공기가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것이 ‘갇혀 버린 바다’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테헤란을 떠나 이란 남부 반다르압바스로 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 황량한 대지가 여행자의 쓸쓸함을 더하게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끝도 없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모습을 보면 완벽한 바다다. 하지만 지도를 보면 이곳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러시아·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 그리고 이란으로 둘러싸인 함수호(바다처럼 염분 농도가 높은 내륙의 호수)다. 카스피해를 일컬어 ‘지각변동으로 육지에 갇혀 버린 바다’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내가 눈으로만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바다 같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 이권들, 특히 천연가스나 석유 등도 보이지 않는 그냥 조용한 바다다. 이게 호수인가, 바다인가 생각하다가 왠지 나도 갇혀 버릴 것만 같다.

바다를 보고 온 나는 식당을 찾아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아저씨는 “시케”라는 말을 섞어가며 파르시(이란어)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이란에서 여행을 한 달 넘게 하다 보면 파르시가 웬만큼 들리면서 간단한 대화 정도는 가능해진다. 나의 파르시 실력으로는 이 아저씨는 분명 ‘술’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술이 완벽히 금지된 이란에서 쉽지 않은 대화임이 분명하다. 아저씨를 따라나서게 된 건 나도 한 달 넘게 술을 못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란 남성들이 찰러스의 시장에서 잡다한 물건을 팔고 있다. 이란은 술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가끔 몰래 술을 사고파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저씨는 술을 직접 만들어 몰래 팔기도 하고, 심지어 직접 마시기도 하는 등 과감한 일을 하고 있었다. 맛을 보니 양주 비슷하게 만들었다.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에 한 병을 산다. 아저씨의 조심스러움은 이것이 일종의 범죄임을 보여준다. 그는 “여기서는 절대 마시지 말라”면서 1시간쯤 걸으면 나오는 장소를 알려줬다. 술을 그곳으로 가져가서 마시라는 뜻이다. 나는 “조용하고 작은 후미진 곳에 숙소를 얻어 괜찮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시장에서 산 과일과 함께 오랜만에 맛있는 술을 마시며 잠이 든다.

찰루스는 좋은 기후와 토양 덕분에 과일과 채소가 넘쳐난다. 생선도 다양하다. 역시 시장은 재미나고 시끌벅적한 활기찬 장소다. 시장을 구경하면서 과일을 사먹는다. 체리가 특히 싸고 맛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체리 대부분이 이란산이다. 그만큼 체리는 이란에서 흔한 과일이다. 시장 골목에 위치한 작은 가게에서 마시는 차는 나를 며칠 동안 계속 오게 만들기에 충분한 맛이다.

찰루스의 시장 풍경. 찰러스는 좋은 기후와 토양 덕분에 과일과 야채가 넘쳐난다. 특히 체리가 싸고 맛있다.
찰루스에서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빗소리에 잠을 깬다. 이란에서 비를 맞으리라곤 이곳에 올 때까지 상상도 못했다. 그토록 더웠던 이란에서의 여행은 이 비를 통해 말끔히 중화되어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반갑다. 내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제법 친해진 사람들이 내게 계속 묻는 것은 ‘그곳’에 가봤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안 가봤다”고 하니까 찰러스 최고의 자랑거리라며 꼭 가보라고 권한다. ‘텔레카빈(케이블카)’이 있다고도 했다. 권유에 못 이겨 ‘그곳’에 가보니 역시 현지인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과 여행자가 좋아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그곳’의 정체는 그냥 케이블카가 있어 산 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큰 공원이었다.

공원에서 한참 걸으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은 작고 조용한 곳이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좁은 마을이다. 이곳의 바다에는 바위가 있어 제법 큰 파도가 치고 있었다.

카스피해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어쩌면 먼 미래에 이곳은 한때 바다였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 건 아닐까. 내가 여행한 곳이 없어진다니, 내 여행의 흔적이 없어지는 아쉬움이 든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일어난 내전이 그것을 일깨워줬다.

찰러스의 어느 골목길. 누군가 파르시(이란어) 글자와 알파벳으로 낙서를 해놓았다.
찰루스 사람들이 나를 보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양곰’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가 있다 보니 동양 여성인 나를 ‘장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장금’이 발음하기 어려워 ‘양곰’이라고 바꿔 부른다. 나도 그 드라마를 이란에서 파르시로 더빙한 것을 봤는데 ‘양곰’이란 이름이 더 잘 들린다. 이제 파르시에 익숙해졌나보다. 내게 또 많이 묻는 질문은 “이란을 좋아하세요”다. 물론 좋다고 말하면 그들은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한다. 여자들이 써야 하는 히잡도 싫고 종교지도자들도 싫단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듯 이란은 종교색이 짙어지면서 국민이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시기다. 보통은 이란에서 터키로 많이들 넘어간다. 그것은 육로로 연결된 최상의 루트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그것은 아라비아반도다. 이란 남쪽에서 아라비아반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물론 배가 있다는 가정 하에 그렇다. 이 정도 거리라면 배가 있을 것이고, 두바이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아라비아반도를 꼭 가보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곳을 통해 아프리카로 갈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자 아라비아반도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여행 루트는 언제나 내게 모험을 요구한다. 만약 터키로 갔다면 알 수 없었을 많은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하니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테헤란으로 돌아가 이란 남쪽 끝까지 가는 길을 알아봐야 한다.

이곳 숙소 주인은 아침이면 방문을 두드려 나를 깨운다. 그날의 숙박비를 받으려는 것이다. 늘 일찍 깨우는 게 싫었지만 오늘만큼은 다행이다. 서둘러 짐을 챙겨 나가야 하는데 주인이 ‘모닝콜’처럼 깨워준 것이다. 테헤란에 도착해 전철을 타고 전에 묵었던 숙소로 간다. 역시나 반겨주는 이들이 있어 기분이 좋다.

이란 남쪽에 반다르압바스라는 항구도시가 있다. 그곳에서 두바이행 배를 탈 수 있다. 그럼 나는 반다르압바스까지 기차표를 끊으면 된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오만·예멘을 거쳐야 하기에 그곳 비자를 알아본다. 한국대사관에 전화로 물어보니 오만과 예멘 둘 다 무비자라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반다르압바스행 기차표를 끊는다. 내일이면 이란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안 간다. 실은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

찰루스의 마을에서 만난 어린이들. 눈가에 선한 미소가 어려 있다
오후 3시40분 기차가 출발한다. 20시간 정도 걸리니 다음날 아침에나 도착할 것이다. 객실에는 6개의 침대가 있었다. 그동안 탔던 기차에 비해 훌륭한 등급의 객실이다. 동행하게 된 아주머니와 그의 아들과 친해지면서 모자가 싸온 온갖 음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예상보다 길어진 여행 탓에 이란 돈이 거의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신용카드가 안 되고 현금인출도 안 된다. 무조건 환전해야 하는데 그 돈이 이제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반다레압바스에 도착하면 끊어야 하는 배표 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절대적으로 아껴야만 한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은 분이었다. 음식도 푸짐하고 넉넉하게 준비해 배를 곯지 않고 간다.

눈이 부셔 깬 2층 침대에서 아침을 환히 밝혀주는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해가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의 대지 위로 떠오른다. 친절한 아주머니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기차에서 주는 차까지 마시니 완벽한 아침이다. 11시 넘어 도착한 반다레압바스에서는 바로 항구를 찾았다. 두 군데를 가봤는데 두바이행 배가 없단다. 그곳에서 알려준 여행사 직원에게 물으니 “오늘은 배가 없고 내일 있다”고 한다.

이제 내일이면 아라비아반도로 향할 것이다. 이란을 떠난다는 뜻이다. 그동안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이란을 뒤로하는 아쉬움과 새로운 나라를 향하는 설렘이 공존하는 이란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또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릴까.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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