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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인신매매 브로커 있었다”

입력 : 2012-10-22 20:46:25 수정 : 2012-10-22 20: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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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목 한중연 교수 제기
조선후기 실태 논문 발표
“저는 본래 평해에 살던 사람으로 마침 대흉년을 당하여 유리걸식(流離乞食)을 하다 지난해 9월에 저의 아비가 영덕에서 굶주려 죽고 말았습니다. (중략) 유골을 수습하여 땅에 묻어주려 생각해도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저와 여동생 귀매가 위 댁에 애걸하여 (저희들의 몸값을) 7냥으로 결정하고 관(棺)과 장례에 드는 물품들을 구매하였습니다. 저는 종신토록 복역하고 귀매는 후소생을 아울러 영영 보은(報恩)할 뜻으로 이에 문서를 작성하니 뒷날 족속 중에 혹시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있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서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일입니다.”

이 글은 김고지(金高之)라는 사람이 1815년(순조15) 작성한 자매문기(自賣文記)다. 자매문기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파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문서’로, 조선 후기에는 먹고살기 어려워 자신이나 가족을 노비로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문제는 김고지와 그의 여동생 귀매의 나이가 겨의 아홉 살과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경목(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유교 이념이 지방 하층민에게까지 스며든 사회였다 하더라도 겨우 9세와 5세밖에 안 된 김고지와 귀매가 ‘자식 된 정리’를 운운하며 몸을 팔아 죽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는 행위는 자연스럽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어린 그들의 곁에서 누군가가 부추기고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자매를 강요하거나 주선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문기까지 작성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한국학 계간지 ‘문헌과해석’ 제60호에 발표한 연구논문 ‘조선후기 한양에서 활약했던 자매(自賣) 알선자들’에서 조선후기 자매 알선업 실태를 조명했다.

자매 알선업자의 존재는 ‘승정원일기’에서 확인된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748년(영조 24년) 2월27일 포도청은 한양에서 전문적으로 양인을 노비로 속여 팔아먹은 이도언, 조만채, 윤봉창 일당을 체포한 뒤 그들의 죄상을 왕에게 보고했다.

정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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