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화 하는 일 무엇보다 중요
관점에 따라 해석 천양지차
목적위한 왜곡 등 오류 피해야
■ 기출문제를 통해본 ‘견해 밝히기’
(1)의 내용을 바탕으로 (2)와 (3)에 나타난 ‘사실’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2013 고려대 모의논술 재구성〉
(1) 랑케는 이전의 자의적인 역사 연구와 서술을 부정하고 엄격한 사료 비판에 근거한 객관적 서술을 지향하여 역사학을 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리려고 하였다. 과거에 ‘사실(fact)’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므로, 역사가는 그것이 기록된 문서를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콜링우드는 역사적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과거는 역사가에 의해 구성되고 그 의미 또한 역사가에 의해 부여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의식 속에서 재구성될 뿐이다.
E. H. 카에 따르면 역사가는 단순히 과거 사실을 기계적으로 편집하는 역사를 쓰거나,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 사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오류를 모두 피해야 한다.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관계는 평등하다. 즉 주고받는 관계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이고,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2)의 요지-문학은 상상의 산물이므로 거기에 나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허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허구는 독자에게 사실처럼 여겨진다. 그 허구 속에는 사실 이상의 진실이 담겨 있고, 그 진실의 호소력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3)의 요지-언론 보도의 객관성은 언론 윤리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이다. 언론의 객관성은 정확하고 선입견이 배제된 보도를 통해 보장된다. 그러나 보도의 절대적 객관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주장이다.
한 사회의 독자적이고 독특한 실재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객관성은 지배적인 집단을 통한 사회체계의 구조화 과정을 거쳐서 생겨난다. 해석공동체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객관성의 개념만을 강조할 경우, 언론은 특수한 사회적 실재 혹은 사실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거나 과장되게 보도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즉 실재의 재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1)의 내용을 바탕으로 (2)와 (3)에 나타난 ‘사실’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2013 고려대 모의논술 재구성〉
(1) 랑케는 이전의 자의적인 역사 연구와 서술을 부정하고 엄격한 사료 비판에 근거한 객관적 서술을 지향하여 역사학을 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리려고 하였다. 과거에 ‘사실(fact)’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므로, 역사가는 그것이 기록된 문서를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콜링우드는 역사적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과거는 역사가에 의해 구성되고 그 의미 또한 역사가에 의해 부여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의식 속에서 재구성될 뿐이다.
E. H. 카에 따르면 역사가는 단순히 과거 사실을 기계적으로 편집하는 역사를 쓰거나,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 사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오류를 모두 피해야 한다.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관계는 평등하다. 즉 주고받는 관계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이고,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2)의 요지-문학은 상상의 산물이므로 거기에 나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허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허구는 독자에게 사실처럼 여겨진다. 그 허구 속에는 사실 이상의 진실이 담겨 있고, 그 진실의 호소력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3)의 요지-언론 보도의 객관성은 언론 윤리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이다. 언론의 객관성은 정확하고 선입견이 배제된 보도를 통해 보장된다. 그러나 보도의 절대적 객관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주장이다.
한 사회의 독자적이고 독특한 실재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객관성은 지배적인 집단을 통한 사회체계의 구조화 과정을 거쳐서 생겨난다. 해석공동체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객관성의 개념만을 강조할 경우, 언론은 특수한 사회적 실재 혹은 사실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거나 과장되게 보도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즉 실재의 재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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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윤 비상에듀 논술강사 |
한국의 입시현실에서 ‘수험생의 견해를 자유롭게 서술하라’는 개방형 논술 문제를 출제하기는 어렵다. 개방형 문제가 채점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들은 평가기준을 객관화, 세분화하고 명확한 출제의도하에 문제의 선명성을 높이고 학생의 능력을 계량화하여 측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출제의도에 맞게 답안을 작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위의 문제 역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수험생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1)의 입장 중 랑케의 견해에 기반해 주장을 펼치기 어렵다. (1)의 랑케가 주로 사실의 ‘확정’과 객관성에 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면 콜링우드와 E. H. 카는 사실의 ‘구성 가능성’과 해석의 ‘주관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2)와 (3)은 주로 사실의 ‘(재)구성’을 다룬다. 이는 ‘사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할 때 랑케의 견해에만 입각해 논의를 펼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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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한복판인 타임스스퀘어 대형 빌보드 광고판에 ‘기억하시나요?’(DO YOU REMEMBER?)라는 제목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광고가 게재되고 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가수 김장훈이 마련한 이 광고는 12월 말까지 게재될 예정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주도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할 경우 국가 신용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노 전 관방장관은 자신이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국립공문서관 자료를 신중하게 검토해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의 책임으로 결정한 ‘내각의 의지’라고 밝혔다.
그는 “자료상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위안부)의 존재와 전쟁 중의 비극까지 없었다는 주장에 슬픔을 느낀다”며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으로부터도 일본의 인권의식이 의심받아 국가의 신용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16명에 대한 직접 청취 조사를 통해 “일본군이 위협해 여성을 연행하거나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고 속였으며, 때로는 하루 20명 이상의 병사를 상대했고 일본군이 패주할 때 버려졌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밝혔다.
고노 전 장관은 이런 일들이 종합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해야만 하는 내용이라며 당시 위안부 증언을 읽은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세계일보 10월9일자〉
위 기사에서 고노의 진술을 참고하면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일차적 근거는 사료의 부족이다. 이는 사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역사 왜곡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해석의 자의성을 배제하고 사실을 객관화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랑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편 위 기사는 콜링우드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사실’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해석주체-정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 역사가에 의해 구성된다는 콜링우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런데 (2)는 사실의 확정 이후에 그것이 문학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3)도 사실의 ‘구성 가능성’을 말한다. 즉 객관적 사실에 대한 믿음이나 객관성에 대한 의미 규정은 지배집단이 주도하는 사회체계의 구조화 과정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답안을 작성할 때 사실의 객관적 인식이나 확정에 대해서만 논의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객관성을 강조한 랑케의 주장만으로 (2)와 (3)의 논의를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주장을 전개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답안의 방향이 강제된 유형에서는 대립되는 견해를 발전적으로 지양한 E. H. 카의 견해에 근거해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다만 E. H. 카의 주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다른 견해를 활용해 카의 한계나 허점을 비판적으로 보완하는 답안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규윤 비상에듀 논술강사
■ E. H. 카의 관점에서 랑케의 주장을 참고한 견해
E. H. 카는 역사가와 과거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파생되는 맥락화된 사실을 중시한다. 역사는 무의미한 연대기의 나열이 아니다. 연대기를 통해서는 사건들의 관련성이나 필연성을 도출할 수는 없으며 그 의미 또한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 즉 역사적 사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소박하고 순진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과거가 역사가의 해석에만 좌우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과거는 역사가의 해석 이전에 존재하던 실체적인 사건들의 집적이다. 과거는 현재의 역사가에게 의미화의 욕망과 동기를 부여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역사가와 사실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역사를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사실의 객관성과 해석의 주관성은 서로를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두 축이 된다.
이 같은 관점은 문학에도 적용된다. 작가는 사실에 기반해 허구를 만들어내지만 이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 진실을 구현할 수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허구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진수의 ‘삼국지’에 필적할 만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보다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진실성을 의심하거나 비판하지도 않는다. 이는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이 역사적 진실을 만들어낸다는 믿음과 닮았다.
이처럼 (2)에서 해석의 주관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언론을 다룬 (3)에서는 이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3)에 따르면 언론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3)이 해석의 주관성을 부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언론이 갖추어야 할 사명인 객관성을 논할 때 랑케의 관점이 비중 있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저널리스트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일 뿐 해석의 여지를 질식시키는 덕목일 수는 없다.
언론인의 사명은 객관적 사실의 기계적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정보도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에 있다. 이는 역사가의 사명이 엄정한 사료 분석에 기반하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주관적 해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구축하는 데 있는 것과 같다. 요컨대 사실과 해석, 객관성과 주관성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E. H. 카는 역사가와 과거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파생되는 맥락화된 사실을 중시한다. 역사는 무의미한 연대기의 나열이 아니다. 연대기를 통해서는 사건들의 관련성이나 필연성을 도출할 수는 없으며 그 의미 또한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 즉 역사적 사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소박하고 순진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과거가 역사가의 해석에만 좌우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과거는 역사가의 해석 이전에 존재하던 실체적인 사건들의 집적이다. 과거는 현재의 역사가에게 의미화의 욕망과 동기를 부여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역사가와 사실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역사를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사실의 객관성과 해석의 주관성은 서로를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두 축이 된다.
이 같은 관점은 문학에도 적용된다. 작가는 사실에 기반해 허구를 만들어내지만 이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 진실을 구현할 수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허구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진수의 ‘삼국지’에 필적할 만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보다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진실성을 의심하거나 비판하지도 않는다. 이는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이 역사적 진실을 만들어낸다는 믿음과 닮았다.
이처럼 (2)에서 해석의 주관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언론을 다룬 (3)에서는 이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3)에 따르면 언론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3)이 해석의 주관성을 부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언론이 갖추어야 할 사명인 객관성을 논할 때 랑케의 관점이 비중 있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저널리스트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일 뿐 해석의 여지를 질식시키는 덕목일 수는 없다.
언론인의 사명은 객관적 사실의 기계적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정보도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에 있다. 이는 역사가의 사명이 엄정한 사료 분석에 기반하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주관적 해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구축하는 데 있는 것과 같다. 요컨대 사실과 해석, 객관성과 주관성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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