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로 읽는 세계사’는 이 같은 세계사의 종전 통념을 여지없이 뒤집는다. 역사를 이끌고 진전시키는 주도자는 공식기록과 문서의 주인공들이다.
책은 공식기록, 문서가 나오게 된 뒷얘기를 풀어놓았다. 500여쪽의 꽤 묵직한 분량의 이 책은 나온 지 5년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애독서로 손색이 없다. 역사 진전의 중요 순간, 고비마다 편지가 등장해 역사의 향방을 결정한다. 주요 인물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편지를 통해 세계사가 진전된 배경이나 원인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개인의 편지뿐만 아니라 황제에게 올린 상소문, 왕의 명령서, 보고서, 외교문서, 민중을 향한 호소문, 공개장 등이 함께 실려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에서 가장 이름 높은 대통령이다. 1863년 ‘노예해방 선언’ 때문이다. 당시 이 발표는 400만명이나 되는 흑인 노예에게 자유의 기쁨을 줬다. 역사가는 그를 말할 때 늘 이 업적을 칭송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링컨 하면 자유와 평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노예해방 선언이 진정 추앙받을 만한 진심에서 우러나왔을까. 일본 사학자 와타히키 히로시는 다른 각도에서 본다. 링컨의 진의는 따로 있었다는 것. 링컨은 인도주의자가 아닌 현실 정치인이다. 노예 해방은 교묘하게 외국의 개입을 피하면서 전쟁을 빨리 끝내고, 더 많은 사람을 선동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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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히키 히로시 지음/디오네 |
노예를 전쟁에 끌어들인 결정적인 증거는 그가 쓴 편지다. 링컨은 뉴욕의 ‘트리뷴’지 사주 호레스 그릴 리가 ‘2000만명의 기도’라는 제목의 공개 질문에 대한 답변 편지에서 “노예 해방의 진짜 의미는 연방의 유지”라고 했다. 신문에 실린 편지의 요지는 이렇다. “내가 노예제도나 흑인종에 대해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연방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노예 해방은 수단이었을 뿐 목적 자체는 아니었다는 것. 링컨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예 해방 선언을 단 한 번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만큼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다.
책은 각종 편지 123통을 중심으로 해당 시기를 살펴본다. 역사서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이 역사의 속살을 살필 수 있는 적절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가을 밤 자녀들에게도 일독을 권할 만하다.
김성욱 웍스 월드와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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