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 비결 중 하나는 여전사 앨리스를 연기한 밀라 요보비치의 존재감이다. 그의 액션은 남성 영웅들과 차별화된다. 차갑고 아름다우며 독특한 질감이 있다. 시리즈마다 세계관을 확대하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도 매력 중 하나다. 1편에서는 좀비 영화에 거대 기업의 음모를 결합시켰다. 2편에서는 라쿤시로 무대가 넓어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회사 엄브렐라의 실체가 드러난다. 3편에서는 배경이 전 지구로 확대된다. T바이러스로 지구는 디스토피아처럼 황폐해진다.
이 시리즈를 봐온 관객에게 남은 궁금증은 좀비가 점령한 지구에서 인류에게 희망이 있는지 여부다. 앨리스와 일행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T바이러스를 개발한 엄브렐라사는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고 싶어한다.
13일 개봉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5: 최후의 심판’은 이런 기대를 비켜가는 작품이다. 줄곧 세계관을 확대했던 이 시리즈는 5편에 이르러 오히려 후퇴했다. 지구 멸망 수준까지 내달린 이야기는 크게 진전되지 않는다.
영화의 주 배경은 얼어붙은 바다 아래에 있는 엄브렐라사의 실험기지로 고정된다. 앨리스가 심해 기지를 탈출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인기게임 ‘바이오 하자드’를 원작으로 한 영화답게 컴퓨터 게임을 하듯 사건이 전개된다. 실험기지에는 도쿄·뉴욕·모스크바를 본뜬 가상 도시가 설치돼 있다. 앨리스 일행은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처럼 각 도시로 옮겨간다. 새로운 장소를 지날 때마다 엄브렐라사의 슈퍼컴퓨터 ‘레드퀸’이 보낸 복제인간과 괴물들이 길을 막는다. 앨리스는 이를 차례차례 해치우며 약속 장소까지 가야 한다. 지상으로 탈출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뿐이다.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가 목적인 듯 다양한 액션 장면으로 구성됐다. 전편들처럼 새하얗고 비현실적인 엄브렐라사에서는 애니메이션 같은 액션이 펼쳐진다. 360도 회전하는 모습은 중력이 느껴지지 않고 격투 장면은 인공적이다. 커다란 기관총과 로켓포를 동원한 총격신은 당연히 배치돼 있다. 유전자 변형으로 탄생한 거대 괴물도 앞을 가로막는다.
이번 편에는 익숙한 얼굴이 대거 등장한다. 1∼4편에서 사라진 인물들이 복제인간 등으로 돌아와 앨리스와 대치한다. 1편에서 여전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레인 오캄포(미셀 로드리게즈)는 냉혹한 특수요원과 대학생의 1인 2역을 연기했다. 2편에 나온 쿨한 경찰 질 발렌타인(시에나 길로리)은 엄브렐라사에 조종당하는 특수부대장으로 변신했다.
좀비들도 진화했다. 식욕만 남은 껍데기였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입에서 불가사리 모양의 혀가 나오고 오토바이를 타는 전사로 발전했다. 그만큼 액션에 박진감이 더해졌다. ‘레지던트 이블’ 5편은 규모가 커지고 가볍게 즐길 거리는 많아졌다. 반면 이야기는 빈약해졌다. 덕분에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은 제대로 눈도장도 찍지 못한 채 소모된다. 에이다 윙을 맡은 중국 배우 리빙빙의 딱딱한 연기는 영화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아 아쉽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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