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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베짱이와 호모 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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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9-07 21:52:30 수정 : 2012-09-07 21: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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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느라 제대로 놀줄 몰라
한번뿐인 인생 신명난 잔치를
9월이다. 어떤 수식어로도 충분치 않을 지난여름의 대단한 더위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새삼스러운 기분이다. 가뜩이나 흥이 날 일 없는 일상에 날씨마저 몸과 마음을 주눅 들게 만들던 계절. 신나고 재미나게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대체로 잘 놀 줄 모른다. 마음 편하게 노는 게 쉽지 않다. 생존을 위해, 성공을 위해 한눈팔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증이나 개개인의 무의식이 작용하는 이유가 클 것이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예술경영학
자기가 하는 일이 정말 즐거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일을 즐기기는커녕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해야 즐겁게 잘 놀 수 있을지 몰라 당황하기 일쑤다. 잘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는 ‘놀다’라는 단어에 부정적 이미지마저 덧씌워 놓았다. ‘노는 애들’, ‘놀고 있네’ 등이 그것이다. ‘노는 일’마저 이리 어려워서야 어떻게 이 복잡하고 힘든 세상살이를 견뎌내랴 싶다.

잘 노는 것도 경쟁력이다. 같은 일을 해도 즐겁게 하는 사람의 생산성이 더 높고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 역시 주지하는 바다. 이 대목에서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년 전쯤까지만 해도 겨울나기를 위해 나머지 세 계절을 쉬지 않고 일한 개미는 성실함의 표상이었고,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한가하게 노래나 부르며 다가올 추위에 대비하지 않던 베짱이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이른바 ‘노는’ 인물의 대명사였다. 성장 논리에 매몰돼 한 방향으로만 치달리던 시절의 해석이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 무리는 아니다. 이견이나 이론이 자유로이 존재할 수 없었던 주입식 교육이 낳은 산물이다.

시대가 바뀌니 이에 대한 해석과 평가도 다양해졌다. 개미와 베짱이의 반전동화가 인기를 끌고, 잘 노는 사람이 일도 더 잘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베짱이는 호모 파버(Homo Faber), 일하는 존재라는 명제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해서 무한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조적인 존재로 재탄생했다.

일상,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존재. 이제까지의 고정관념과 편견의 틀을 깨는 신선한 해석이 반갑기 그지없기는 하지만 평생 성실하게 일만 해 온 무수한 개미들이 여유가 넘치는 세상을 만나도 제대로 놀 줄 모르는 이 현실이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여태껏 제대로 놀아본 적도, 잘 노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다. 일상의 놀이문화, 그런 것 자체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는 일하는 존재로서의 역할만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먹고살만 해진 요즘 오죽하면 여가학이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등장하고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겠는가.

‘호모 루덴스’, 즉 유희의 인간,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한 네덜란드 출신의 사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인생이 놀이처럼 영위돼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지당한 말씀이다. 모든 문명의 기원은 놀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인생, 신명난 잔치 한판 벌이고 싶다. 베짱이의 배짱을 부러워만 한다면 남의 잔치에서 떡이나 얻어먹을 뿐이다. 누구든 제대로 멋지게 놀 수 있다. 술자리가, 인터넷 게임과 노래방이 우리의 놀이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 베짱이의 계절 여름철을 보내며 느끼는 바다. 가을에는 잘 좀 놀아봐야지!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예술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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