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넘은 세월을 버틴 고대도시의 흔적을 찾아떠난 시간여행
총천연색 찬란한 모스크… 드넓은 세월의 파편 이란 야즈드에서 8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면 시라즈에 도착한다. ‘잘 사는’ 도시인 시라즈는 고대도시 야즈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시라즈도 4000년 역사를 가졌지만 야즈드와 달리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시라즈는 기원전 2000년쯤 처음 세워졌다. 1750∼81년 존속한 잔드왕조의 수도였으며, 시아파 무슬림이 꼭 순례해야 하는 성지이기도 하다. 시아파란 이슬람교 종파 중 하나인데 이란은 시아파가 전체 국민의 90%가량 된다고 한다. 이란은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지만 대통령은 행정적인 일을 할 뿐 실질적 권한은 ‘이맘’에게 있다. 이맘이란 종파마다 약간 다르게 쓰이는 용어인데, 대체로 이슬람교 최고 지도자를 뜻한다.
이맘 호메이니는 1989년 사망하기 전까지 이란의 최고 지도자였다. 이맘 호메이니는 이란 여행 도중 가장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다. 아마 가장 많이 보는 것도 그의 초상화일 것이다. 모든 지폐에 이맘 호메이니가 그려져 있는 걸 보면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맘 호메이니와 관련된 모든 기념일은 공휴일이다. 심지어 그의 딸 생일도 그렇다. 이맘 호메이니와 함께 흔히 볼 수 있는 초상화는 이마에 피를 흘리는 남자 그림이다. 그 주인공은 ‘후세이니’라는 유명한 장군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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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올라가 내려다본 페르세폴리스 유적. 이곳은 워낙 넓어 관광객이 아무리 많이 와도 붐비지 않을 것 같다. |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22∼486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황제가 제국 수도로 세운 곳이다. 역사가 긴 만큼 훼손도 심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게 경이롭다. 훼손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저질렀다. 생각해보면 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로를 거슬러 여행하고 있는 셈이다.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2000년 넘는 세월이 흐른 만큼 이곳을 여행하는 일은 마치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특별하다. 자연경관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좋다. 타임머신 같은 순간이동이 아니라, 다른 세기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현지어로 ‘타흐트-이-잠시드’라고 한다. 내 귀에는 ‘탁타잠쉬’처럼 들렸다. 어느 학교에서 견학을 왔는지 한껏 멋을 낸 고교생들이 무리를 지어 입장한다. 이곳은 너무 넓어 사람이 아무리 많이 와도 붐비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세월의 흔적들을 단서 삼아 한발 한발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터만 남아 있는 것도 많고 조각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도 꽤 있었다. 박물관에도 들어가 보고 했지만, 이곳을 진짜로 보려면 산에 올라가야 한다. 꽤 걸어서 산에 오르면 동굴 안에 들어있는 유적도 볼 수 있다. 물론 동굴 속을 보려고 온 것은 아니다. 산 위에서 보면 페르세폴리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과 햇볕에 더더욱 빛나는 흙이 찬란하게 대조되어 한 장의 역사책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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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시(이란어) 글씨를 배경 삼아 선 귀여운 이란 어린이들. 커다랗고 동그란 눈, 천진난만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
다시 시라즈로 돌아와 갈 수 있는 곳은 모스크다. 우연히 만난 어느 부부와 동행하기 전까지 모스크는 나에게 그냥 모스크일 뿐이었다. 부부는 이란에서는 보기 힘든 썩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내는 사진작가였고, 남편은 직업이 건축가라서 늘 카메라를 갖고 다녔다. 사진이라는 좋은 공통의 화제가 있어 동행이 더욱 쉽게 이뤄졌을 것이다.
그들을 따라 모스크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가 찬란한 빛이 사방에 퍼지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곳을 본 순간 ‘이건 그냥 모스크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에게 특별한 모스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스크 이름은 ‘나시르 알 몰크(nasir al molk)’다. 수천 가지 색이 반짝였고, 돔의 양식 또한 독특했다. 건축가인 남편은 열심히 건축에 대해 말했다. 사진작가인 아내는 나와 이 빛들을 찍는 방법을 놓고서 실험을 했다. 물론 어떤 방법으로든 이 빛들을 내 작은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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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즈의 어느 골목길을 지나다 우연히 만난 아프가니스탄인 가족. 밝은 표정 속에는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이주민의 아픔이 서려 있다. |
너무 예쁜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픔이 느껴져 나도 마음이 아파졌다. 아프가니스탄인은 우리나라 사람과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그래선지 정말 친근하게 여겨졌다. 이란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 대부분 전쟁으로 없어져 버린 고향을 떠난 이들이다. 그렇다고 이란이 그들을 위해 친절을 베푸는 것도 아닌 듯하다. 같은 이슬람권이라도 종파가 달라서 그런지 이라크인이나 아프가니스탄인을 바라보는 이란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잔드 스트리트에 있는 성은 예전에는 왕국이었단다. 그 성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는 인기가 많다. 나와 함께 모스크를 찾은 부부가 알려준 곳이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맛집 중의 맛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인기를 끌었던 터키식 아이스크림인데 떡처럼 쫄깃쫄깃하다. 이 아이스크림을 어디서 만들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점은 맛있다는 것이다.
시라즈의 ‘바자르(시장)’는 야즈드에 비하면 굉장히 현대식이다. 시골장터의 맛은 없지만, 규모가 크기 때문에 파는 물건도 많다. 여인들은 검은 차도르 안을 최대한 화려하게 장식한다. 옷도 화려하게 입지만 그보다 보석으로 된 장신구를 많이 한다. 나도 이곳에서 귀걸이와 반지를 산다.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보석상에게서 꽤 괜찮은 세트를 살 수 있다. 또 너무나 사고 싶었던 것은 카펫이다. 작은 것부터 큰 사이즈의 카펫까지 화려하게 짜여진 무늬가 아름답다. 페르시아풍의 화려한 인테리어에 쓰이는 고급 카펫을 여기서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여행 도중 짐이 될까봐 카펫을 사지 못하는 점이 아쉬워 대신 작은 테이블보를 샀다. 무늬가 정교하고 잘 짰으며 색감도 좋고 무엇보다 질이 우수하다. 2000원을 들여서 샀으니 다른 물건에 비하면 비싸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공장에서 찍은 천이 아니라 직접 베틀로 짠 무늬다.
이란에 온 지 꽤 지났고, ‘이라니(이란 사람들)’와도 제법 같이 지내다 보니 그들의 일상에 잠시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이란 영화는 유명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덕분에 몇 편을 본 적이 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이런 걸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으니, 실망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고른 영화가 코미디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행에서 원칙이라는 건 없지만, 내가 생각해 놓은 게 있다.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생활하고, 또 내가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떠나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시라즈를 떠나 에스파한으로 향한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늘 떠나는 아쉬움과 도착할 곳을 향한 설렘이 교차한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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