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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물질의 존재이며 동시에 의식의 존재다. 물질의 존재로서 먹고 마시며 물질의 텅 빈 데를 채운다. 아울러 늘 무언가를 생각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우주는 다차원적 공간이다. 우리는 3차원의 공간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한다. 우리는 물질의 존재이며 동시에 의식의 존재다. 우리는 물질의 존재로서 먹고 마시며 물질의 텅 빈 데를 채운다. 아울러 우리는 늘 무언가를 생각한다. 사람의 몸은 텅 빈 공(空)이다. 죽음은 우리의 실재를 꿰뚫는다.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삶의 광대놀음을 할 뿐이다. 사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5차원, 6차원, 7차원들은 이 공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다만 그걸 인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나라는 존재는 그것도 모른 채 공(空)으로 살아간다. 내 몸통, 사지, 오장육부는 공이다. 그 공을 채운 것은 번잡한 욕망이고, 무한히 흐르는 시간이다. 욕망은 덧없고 시간은 형체가 없다. 나는 있는 없음, 활동하는 무(無), 우주에 충만한 기(氣)의 한 집합체일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여기에 살아서 삶을 연기(演技/緣起)하는 중이다.
“본래 자화자찬 아닌 외로움은 없어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걸 알면, 그 으악새 슬피 우는 울음 딱 그쳐버리거나, 자못 심각한 표정 거두시고 헤시시 웃는다. 본래 진기명기 아닌 외로움은 없어서, 한 공주 한 왕자하고 나서도 고색창연한 연기는 계속된다. 제 연기를 고백하는 연기, 제 연기를 부정하는 연기. 제 연기를 모독하고 타도하고 끝내 성화(聖化)하는 연기. 외로운 사람은 끝없이 풍선을 불어댄다. 그는 제가 부는 풍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이성복, ‘그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
나는 날마다 삶이라는 이상한 꿈을 연기한다. 오, 그래, 이상하기도 하지. 끝없이 풍선을 불어대고 그 풍선 속으로 한사코 들어가려는 사람은. 오늘 나는 어떤 연기를 했지?
기숙사 내부의 밤은 소름이 끼칠 만큼 고요하다. 고요하다 못해 괴괴(怪怪)하다. 밤의 공간들은 낮의 부재로서 저를 드러낸다. 어둠은 빛의 부재가 아니라 차라리 무(無)다. 밤은 무로 가득 차 있다. 밤은 무의 배후에서 불쑥 튀어나와 번져간다. 밤은 일하는 사람의 손에서 도구를 빼앗아 내려놓게 한다. 밤은 우리의 현존을 존재함 저 너머로 데려간다. 밤은 우리를 잠재움으로써 수고와 노동의 억압에서 해방시킨다. 어떤 사람들은 밤에도 잠들지 못한다. 불면이 그의 존재를 덮치는 것이다. “밤에, 불면 속에 나의 깨어 있는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깨어 있는 것은 밤 자체이다. 그것은 깨어 있다. 이 익명적인 깨어 있음 속에서 나는 완전히 존재에 노출되어 있다. 이 깨어 있음 속에서, 나의 불면을 채우는 모든 사유는 아무것에 대해서도 중지되지(고정되지) 않는다.”(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깨어 있는 것은 밤이다. 그 깨어 있는 밤에 우리는 벌거숭이가 되어 표류한다. 움직이지도 않은 채 우리는 어디론가 흘러간다. 흘러가면서 존재의 에너지를 방전시킨다. 마침내 불면은 우리의 의식을 거의 찢어놓는다. 불면이 남기는 것은 존재의 피폐함이다. 기숙사는 어둡다. 복도의 등만 밤새도록 빛난다.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유혹된 나방들이 저 먼 곳에서 날아와 유리창 밖에서 춤을 춘다. 나방들은 춤을 추며 짝짓기를 한다. 기숙사는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는 출입이 전면 금지된다. 출입문이 차단되는 그 시간의 기숙사는 ‘봉쇄수도원’으로 탈바꿈한다. 이 봉쇄수도원에서 나는 삶에 대한 생각을 펼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무(無),/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해마다, 이 언덕 아래로,/ 4월이 재잘거리며, 꽃뿌리며/ 백치처럼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빈센트 밀레이, ‘봄’)
진흙으로 빚은 사람들이 잠든 시각. 소모되고 사라지는 인생…. 무엇이 삶의 올바름인가? 맹금처럼 인생은 나를 할퀴고 지나갔다. 나는 나날이 흘러가는 남은 인생의 날들을 헤아리면서, 혹은 죽음에 대한 무한공포를 삶에의 동력으로 바꾸어가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세계에 펼쳐진 모든 종류의 지식을 추구한다. 과연 무수한 책을 읽고, 또 많은 책을 쓰며 사는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별들은 머리 위에서 돌고,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이 산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고요의 성채로 변해버린 기숙사에서 여름을 나는 이가 또 있을까? 고요의 성채에서 소금장미의 향기를 맡고, 별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나는 우주의 접힘이자 균열이다. 이 접힘 속에 생명의 내역이 적히고, 이 균열 속에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기가 들어찬다. 대학 기숙사에 방을 하나 얻어 여름을 나는 것도 내가 태양 에너지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지구라는 열린계 안에서 삶을 빚는 방식의 하나다.
아침에 토스트 두 쪽을 먹고 점심에는 대학 구내식당에서 순두부 백반을 사먹는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분자다. 이 분자는 빠르게 분해되고 음식의 형태로 들어온 새로운 분자로 대체된다. “분자는 환경에서부터 와서 한때 머무르면서 우리를 만들어내고, 다음 순간에는 다시 환경 속으로 분해되어 간다.”(후쿠오카 신이치, ‘동적평형’) 석 달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분자들로 구성된 ‘다른’ 존재다. 아니 “몸 자체도 분자가 일시적으로 형태를 만들어낸 것”(후쿠오카 신이치, 앞의 책)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런 분자적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생명은 흐름 안에 있으며, 흐름 안에서 환경과의 일정한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빛나는 것은 녹이 슬고, 단단한 것은 부서지며, 뭉친 것은 흩어지고, 산 것은 반드시 죽는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는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 때문이다. 생명은 이것에 스스로 파괴하고 재구축하는 순환 운동, 즉 ‘동적 평형’으로 맞선다. 하지만 이 평형 상태도 언젠가는 끝난다. “생명은 오랜 세월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과 쫓고 쫓기는 동안 조금씩 분자 차원에서 손상이 축적되다가 결국 엔트로피의 증대에 추월당한다.”(후쿠오카 신이치, 앞의 책) 이게 바로 개체의 죽음이다.

자연의 본성에 따라 고요하게 엎드려 있는 이 삶이 그토록 우아하고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영원성’에 대한 상념을 멈추지는 않지만, 오늘 여기에서의 하루가 결코 도무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영원성’에 견줘 하찮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내일은 또다시 황옥(黃玉) 같은 해가 뜨고, 그 해가 내일의 삶을 비추리라. 나는 알고 있다, 이 여름이 내 생애에 단 한 번 나타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여름임을, 해가 뜨고 지는 이 평범한 하루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금(正金)보다 더 값진 하루라는 사실을!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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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강미라, ‘몸 주체 권력’, 이학사, 2011
●후쿠오카 신이치, ‘생물과 무생물 사이’,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후쿠오카 신이치, ‘동적평형’,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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