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를테면 선생님이 갸루상에게 엄마를 모시고 오라 하면 “엄마가 집에 없으무니다”, 그럼 아버지를 모셔 오라 하면 “아버지도 없으무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답답해서 그럼 너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면 “살지 않스무니다”는 답이 나오고, 기가 막혀서 니가 도대체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람이 아니무니다”로 이어지는 맥락이다. 어디서 태어났냐고 물으면 “알에서 태어났으무니다”, 다시 니가 사람이냐고 물으면 역시 “사람이 아니무니다”로 반복되는 구조다.
영어 ‘걸(girl)’을 일본식으로 읽은 게 ‘갸루’인데, 진하고 두껍게 분장 수준의 화장을 하고 남들 눈치 안 보며 멋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들이 1990년대 일본 사회의 ‘갸루문화’를 형성했다. 일본사회에서도 초기에는 문제가 됐지만 이제 하위문화로 정착한 단계다. 일부 일본 네티즌은 갸루상이 일본을 비하했다면서 한국인 비하 개그를 만들자는 목소리도 낸다고 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유명 개그맨 진나이 도모노리의 말처럼 개그는 개그일 뿐이다. 이 갸루상에 많은 이들이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제는 전과 12범이 전자발찌를 찬 채 유치원생 자녀를 배웅하고 돌아온 주부를 백주에 성폭행하려다 살해했다. 날벼락을 맞은 어린 자녀와 남편에게 ‘멘붕’이란 단어는 사치스럽다. 며칠 전에는 전철역에서 묻지마 칼부림으로 영문도 모른 채 8명이 자상을 입었다. 휴식과 명상의 올레길을 걷던 여성이 살해돼 유기됐고, 어린 학생들의 자살도 이어졌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편을 갈라 증오하고, 내 편이 아니면 네 편이다. ‘사람이 아니무니다’는 갸루상의 대사가 이즈음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가슴에 저리 꽂히는 이유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조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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