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 사업장서 집단소송 진행…패소땐 ‘연체금 폭탄’ 맞을수도 부동산 경기 장기 침체가 소송 후폭풍 사태로 번지고 있다.
주택 계약자들이 중도금을 대출해준 은행을 상대로 ‘상환 책임이 없다’는 채무부존재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도권 신규 분양 아파트의 입주가 지연되자 시공 하자 등을 이유로 분양계약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이런 소송 후유증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집값이 높던 2008년에는 이런 소송이 없었으나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4개 사업장 계약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화된 지난해에는 17개 사업장이 소송에 휘말렸고, 올 상반기에도 10개 사업장 계약자들이 추가로 소송을 걸었다. 한 사업장에서 복수의 집단소송이 발생한 경우를 고려하면 실제 소송 건수는 이보다 많다.
채무부존재 소송은 통상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분양계약 해제 청구소송과 함께 진행된다. 계약자들은 중도금 대출이 건설사와 은행 간에 이뤄지는 일종의 ‘업무협약’이고, 계약이 해제될 경우 계약자는 대출금을 낼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건설사와의 소송에서 이기면 건설사가 중도금을 반환하는데, 이 중도금은 대출금 상환에 우선 사용하게 돼 있어 계약자에게는 대출금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은 대출거래약정서상 돈을 빌려 쓴 사람인 계약자가 대출금 변제 의무를 진다는 입장이다.
금융권과 법조계에서는 채무부존재 소송에서 계약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분양계약과 중도금 대출은 별개의 계약이기 때문에 분양계약이 해제됐다고 해서 대출금 채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송이 잇따르는 이유는 소송기간에는 대출금이나 이자를 연체해도 채무불이행자 등록·신용카드 정지 등의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소송과 이자 연체가 속출하면서 은행의 건전성도 덩달아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말 1.18%였던 집단대출 연체율은 올해 5월 말 1.71%까지 치솟았다. 이는 주택대출 평균 연체율(0.85%)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대출금 이자 연체는 은행뿐 아니라 계약자에게도 손해를 끼치게 된다고 지적한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는 불이익이 없더라도 승소하지 않는 이상 연체금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송에서 지면 2∼3년의 소송 기간 밀린 연체금을 한꺼번에 내야 하기 때문에 ‘연체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며 “보증을 서는 건설사와 연체율이 높아진 은행은 물론 막대한 이자를 떠안은 계약자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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