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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섬 방랑시인’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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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바다앞에서 평생 詩語를 낚아올린 그는, 실력좋은어부다
바다는 나에게 이끌림이다. 바다의 방랑자처럼 나는 섬으로 간다. 때로는 절벽과 등대 밑에서, 때로는 어부의 무덤 앞과 방파제에서 삶이 뭐고 인생이 뭔가, 고독은 뭐고 시는 무엇인가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섬이었다. 물 위에 뜬 섬이었다. 그러나 통통거리며 지나가는 나룻배, 벙벙 울며 떠나는 여객선, 억센 파도에 휘말리며 만년을 사는 기암절벽, 양지바른 햇볕에 묻혀 조용히 바다를 듣는 무덤, 이런 것들은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낙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아서 낙원에 다닌 셈이다. 그 낙원에서 맑고 깨끗한 고독을 마실 때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그것을 시로 쓴 것이다. 한평생 섬을 소재로 시를 써 온 이생진(84) 시인의 고백이다. 그가 주로 찾는 섬은 외롭고 작은 섬들이다. 사람이 그리워서 울먹이다가 작아진 섬이다. 그는 온종일 갈매기랑 놀다가 바닷물이 모래알에 빨려들어가듯 섬에 빨려든다. 그럴 때쯤 게 한 마리 외롭다고 살을 꼬집으면 시가 된다.

시인은 어린 시절 고향 충남 서산에서 4㎞ 정도 떨어진 바다를 즐겨 찾았다. 친구가 살고 있는 서해 섬도 놀러갔다. 이때부터 바다는 시인의 놀이터였고 시인의 정서가 됐다. 중학교 3학년 때 소설 ‘상록수’(심훈)와 ‘흙’(이광수)을 읽고 농촌 계몽활동에 매료되면서 본격적으로 섬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섬과 바다는 새롭게 다가섰다. 아버지의 부재는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 어머니도 그런 그를 지켜만 보셨다. 바다와 섬은 그에게 시가 됐고 위로가 됐다. 나이가 들면서는 일제 말 혼란기, 군사독재 정권으로 이어진 시대를 감내하는 수단으로 섬을 떠돌며 시를 썼다.

그에게 시는 운명인 셈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전국을 떠돌며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다만 차이가 있다면 김삿갓이 육지를 떠돌았다면 그는 섬과 바다를 표류했다.

매달 한 번씩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열리는 시낭송회에 참여하기 위해 인사동 거리에 나타난 이생진 시인. 그에게서 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위안이자 최소한의 인간미다.
교사 재직 시에도 방학 중엔 섬을 주유했다. 한국의 섬 3215개 중에 유인도는 494개, 무인도는 2721개다. 그동안 1000여 개의 섬을 가고 또 갔으니 안 가 본 유인도가 없다. 웬만한 무인도도 그의 발길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시인은 나이 팔십이 넘어선 요즘도 섬을 떠돈다. 여러 번 갔던 섬도 이젠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엔 그저 그리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야 섬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가 연민으로 다가온다. 알고 지내던 적잖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코흘리개들은 결혼해 대부분 뭍으로 떠나고 섬엔 노인들만 남았다.

애꿎게 20여년 전 걸었던 섬 백사장을 다시 거닐어 본다. 그러면 백사장과 아련한 이들이 시가 된다. 떠난 세월과 얼굴들이 시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 저 사람이 가면 저 섬에 누가 남을까 하는 생각도 시적 이미지가 된다. 이 시대를 지나간 섬에 관한 이야기다.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선 김환기 화백이 달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풍광에 빠지기도 했다. 청산도에서 1시간 거리인 여서도에선 김만옥 시인의 노모를 만났다. 가난 때문에 시를 쓰고 그 가난 때문에 노모와 아내, 딸 셋을 두고 삶을 버린 김만옥 시인에게서 어린 시절의 그를 보았다.

낭만을 생각하면 그의 시 세계는 부스러진다. 그러기엔 섬은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 시인에게 유일한 낭만은 홀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섬에선 외로움이 손에 잡힐 듯하다. 섬에선 외로움조차도 맑고 깨끗하다.

시인은 우리 사회가 외로움 자체도 오염시켰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빙자한 자살도 그런 예다. 외로움의 오염시대에 진정한 ‘섬의 정서’에 다가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외로움은 그의 시의 자원이다. 파도 소리, 수평선, 별빛 등은 변하지 않는 순수 고독이다. 섬과 바다는 그렇게 시가 된다. 외딴섬 분교에선 1일 교사를 자청해 아이들의 동심을 만난다. 섬 길에서 만난 이들과는 같이 외로움을 보듬어 가는 길동무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인사동에서 13년째 시낭송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밤 한 카페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직업도 의사·변호사·교사 등 다양하다. 부산·목포·대구에서도 올라오는 이들이 있다. 시가 사라지는 사회가 안타까워 모이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시가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시낭송회를 끝낸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시를 한 수 써 트위터에 올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140자 정도면 시로 손색없다. 시의 부활을 그가 꿈꾸는 이유다. 그의 20살 청춘은 6·25전쟁이 망쳤고, 이성을 사랑하는 감정의 경험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시라도 건진 건 그에게 위대함이다. 카카오톡으로 젊은이들과 시를 나누고 블로그에 매주 한 편의 시를 올리는 것을 그는 기를 쓰고 한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시를 보여주고 있는 이생진 시인. 트위터 등은 ‘이 시대 감성’인 젊은이들과 그가 소통하는 통로다.
지금의 그의 삶은 심심하지 않다. 늙음이 용도 폐기의 과정이 아니라 또 다른 질적 생산의 과정임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은 당위가 아니라 즐거움이다. 인간은 숨이 멎는 순간까지 가치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생은 영원한 청춘이어야 한다. 그는 이 순간이 인생의 꽃이라 했다. 열매까지는 필요 없다. 그의 인생이 담긴 시를 사람들이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가 다시 배낭을 꾸리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낭엔 주로 고추장 볶음, 멸치 볶음, 누룽지 등이 채워진다. 야채는 섬에서 현지조달이다. 끼니가 부실하지만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건강하면 60세 이후가 천국이란 점을 그는 요즘 실감한다. 내 인생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는 자부심과 함께 결정체들이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섬처럼 시달리며 살아남은 것들은 눈부시게 아름답게 마련이다.

시인의 시집 35권 중에 20권이 섬과 관련돼 있다. 1968년 ‘현대문학’에서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여생도 섬시에 바칠 것이다.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켰다. 섬은 사나운 파도와 싸우면 더욱더 등 푸르게 떠있다. 섬 바다에 서면 그는 어부처럼 그물 가득 시편들을 건져 올린다. 설교는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고,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고 읊는다.

서울 북한산 자락에 살고 있는 그는 섬 여행과 시낭송회를 빼고는 거의 시내에 나오지 않는다. 유일한 시내 나들이 장소가 서점이다. 이 시대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하루에 40분씩 세 번의 산책이 그의 유일한 건강 비결이다. 더 공부하고 더 쓸 것을 쓰기 위해서다. 그는 이를 이기적이라고 했다.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이만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법이다. 시도 사랑법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이 긴 여운으로 다가온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그에게 시는 노인의 사자 꿈 같은 것이다.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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