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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넓고 깊은 따뜻한 품”… 심금 울리는 사부·사모곡

입력 : 2012-05-04 23:30:16 수정 : 2012-05-04 23: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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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에게 어머니는 부처요 함께사는 이세상은 극락”
“병마로 돌아가신 아버지 빛으로 나를 지켜주시고”
“어머니를 돌보면서 어머니의 속옷을 손빨래로 했다. 아, 어머니라고, 노인이라고 생각해온 어머니의 팬티가 분홍 꽃 팬티였다. 어머니가 여자라는 것을 쉰 넘어 처음 알았다. (…) 어머니가 퇴원하신 날, 부끄러워 하는 어머니를 목욕시켜 드렸다. 자식 앞에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민망해하는 어머니에게 ‘어무이요, 백옥 같은 피부가 다시 시집가도 되겠습니더’라며 깨끗이 씻겨 드렸다.”

시인 정일근(54)씨의 글을 읽은 대한민국 남성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여자목욕탕에 다니며 부끄러워 했던 남자는 많아도, 나이 들어 어머니의 몸을 씻긴 경험이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정씨 말대로 어머니도 여자다.

그런데 남자들은 대부분 그걸 모르고 산다. 정씨는 갑상샘암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처음 어머니 속옷을 봤다. “나에게 어머니는 부처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 세상이 극락”이라는 정씨 말에 마음속으로 눈물을 뚝뚝 흘릴 남성들 참 많을 것 같다.

정일근                      이경림                     오탁번                     신달자                      김종해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여름호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시인이 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라는 특집기획을 선보였다. 정씨를 비롯한 12명의 시인이 털어놓은 부모님에 관한 추억을 한데 묶었다. 아들이 기억하는 어머니, 딸이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

김종해(71)씨의 시 ‘사모곡’이다. 세상에 나를 낳아준 어머니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김씨는 “시인으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절실한 화두는 어머니”라며 “고희를 넘긴 지금까지 나는 ‘어머니’를 주제로 많은 시를 시집 속에 남겼다”고 회상한다.

오탁번(69)씨는 어머니의 장례식 풍경을 담은 ‘하관’이란 시를 썼다. 4남1녀 중 막내인 그는 37세이던 1979년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하늘과 땅이 무너졌으니 나에게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 어머니는 나에게 하늘이자 땅이었다. 내 목숨이었다”는 시인의 탄식이 독자들 가슴을 후벼판다.

“그때 가장 왕성했던 나의 기도는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나는 아버지를 모실 수 없었고 (…) 이것이 이기심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제발 오늘 제발 하느님 오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해 주세요.’ 밥 먹듯 하던 나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 1997년이었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말년의 아버지에 관한 신달자(69)씨의 고백은 너무 정직하고 솔직해 오히려 슬프다. 자본주의 물질문명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 중 신씨에게 돌을 던질 자 누가 있을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 신씨는 마음 한구석의 죄책감을 부여잡고 ‘아버지의 빛’이란 시를 썼다. 그는 “아버지가 가시면서 내게 시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며 “지금도 아버지는 ‘빛’으로 나를 지켜 주신다”고 말한다.

4남1녀 중 장녀인 이경림(67)씨는 어릴 적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여자를 차별하던 시절에 그는 남동생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았다. 평생 가난한 문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딸을 시인의 길로 이끌었다.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지은 시를 읽는 것은 즐겁고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간혹 아주 좋은 시다, 라고 칭찬을 해주시는 날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 나는 형광빛 스탠드가 켜진 앉은뱅이책상 원고지 앞에 밤늦도록 앉아 계시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문득 ‘자식은 효도하려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子欲孝而親不待)’는 옛 한시 구절이 떠오른다. 이 푸른 5월이 가기 전에 어서 부모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따뜻한 말을 건네보라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 넓고 깊은 품에 안겨보라고 시인들은 권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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