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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칼럼] 장미 열여섯 송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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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에 대한 친절로 이룬 대문명
다름 인정안하는 텃세문화 자성을
아름다웠다. 인간에 대한 감동으로 따스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여행했던 때의 기억이다. 걸프전이 끝났지만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던 때의 일이다.

회교사원을 찾아가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아득하게 하늘로 치솟은 돔을 바라보며 거닐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소년이었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자 소년은 나를 향해 검붉은 장미 한 송이를 내밀었다. 내가 한국어로 물었다. 날 주는 거니. 

한수산 작가
우리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소년에게서 받은 한 송이의 장미, 나는 고마운 마음에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내가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포즈를 취하고 있을 때였다. 뒤쪽에서 와 하는 함성이 일었다. 우리를 지켜보던 10여 명의 어린이가 내게 줄 장미를 꺾기 위해 정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날 받은 열여섯 송이의 장미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내 안에서 여전히 싱싱하다.

며칠 후 바그다드의 길거리에 서 있을 때였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만나게 되는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와 동상과 찬양의 구호로 어지러운 거리에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때 한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한 손에는 1m는 넘게 쌓아올린 호부스 빵을 들고 가던 청년이 곡예라도 하듯 자전거를 돌렸다. 내 앞으로 다가온 청년은 다짜고짜 빵 하나를 가슴에 안겨주는 게 아닌가. 엉겁결에 빵을 받아든 내가 고맙다는 말을 할 사이도 없었다.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웃어주면서 그는 빠르게 사라져갔다.

폐쇄된 바그다드 공항 활주로에는 키가 넘게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항생제를 구할 수 없는 병원에서는 환자가 신음하고,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설탕과 우유가 턱없이 모자라 어머니들이 눈물짓고 있었다. 그 고단한 삶 속에서 만나는 친절에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귀국 후였다. 주한 이라크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 놀라웠던 친절의 의미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나그네에 대한 친절이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문명이 어떻게 융성했는가를 일깨우는 짧은 한마디였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을 낀 바그다드는 메소포타미아문명이 만들어낸 도시였다. 이방인이 전해주는 정보와 이질적인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는 열린 마음이 문명을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낯선 것을 포용하고, 자신들의 고유함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정신이 문명을 일구고 위대한 역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니 ‘톨레랑스(관용)’니 하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면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 요즘이었다.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씨에 대한 거부감이 불러일으킨 반향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익명의 그늘에 몸을 숨긴 이들의 옹졸함으로 간과하거나 다문화에 대한 저항감으로 국제화를 가로막는 위험한 편견으로 단순화하며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혼잡한 도시생활을 접고 한가로운 삶의 여유를 찾아 전원주택을 마련해 시골을 찾았던 사람이 끝내는 그 마을사람의 졸렬하기 짝이 없는 텃세 때문에 얼마나 많이 시골을 떠났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이질적인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에는 그 이질성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다양화와 그것을 우리와 하나가 되도록 하는 동화(同化)의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자스민 사태’는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 인색한 우리 사회에 좀 더 근원적인 성찰의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한수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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