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미녀 스파이, 과학자, 장교 등 그간 쉬 보지 못했던 캐릭터와 통일 한반도라는 가상의 설정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한 왕제와 북한 장교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MBC 수목드라마 ‘더킹 투하츠(극본 홍진아 ․ 연출 이재규)’는 시청률보증수표 하지원-이승기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로 고전 중이다.
12일 방송된 '더킹’은 시청률 11.0%(AGB닐슨 전국기준)을 기록하며 12.5%의 SBS ‘옥탑방 왕세자’에 2주 연속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줬다. ‘더킹’은 시청률 하락 추이를 보이고 있는데다 KBS 2TV ‘적도의 남자’의 추격도 만만치 않아 갈수록 코너에 몰리는 상황이다. 하지원-이승기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뼈아픈 결과다.
앞서 야심차게 발을 뗐던 북한 소재 드라마도 참패를 면치 못했다. 북한 미녀스파이와 남한 톱스타의 로맨스를 그린 KBS 2TV 드라마 ‘스파이 명월’은 한예슬-에릭 캐스팅으로도 시청률 한 자릿수 굴욕을 맛봤다. 더불어 한예슬의 촬영 거부 논란으로 여배우 교체설까지 나돌며 안팎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황정민-김정은 주연의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창사특집드라마 ‘한반도’는 남북 합작 대체에너지 개발과 통일 논의가 가속화되는 미래의 가상 한반도를 배경으로 엘리트 과학자 간 사랑을 담은 작품. ‘한반도’는 수백억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의 막을 내렸다.

남남북녀의 로맨스가 시청자에 어필하지 못하는 것은 북한 소재 드라마가 최근 안방극장 대세인 로맨틱 코미디, 판타지 사극 그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돌기 때문이다. 남북분단 현실에서 이들 드라마는 가상의 시대를 통해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야기한다. 분단 상황에서 야기된 남북에 대한 선입견이 표현되는 과정에서 무거운 주제들도 심심찮게 꺼내진다. 하지만 밝고 유쾌한 판타지 로맨스를 기대했던 시청자는 심각한 주제에 금방 등을 돌린다.
일부 시청자들은 남북한 통일 설정에 대한 거부감, 익숙지 않은 북한 말투에 이질감을 느끼고 채널을 돌린다. 판타지임에도 시청자를 유인할 만한 매력요소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가상의 인물과 현실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과장된 설정과 공감하기 힘든 장황함에 시청자는 쉽게 지친다는 지적이다. 북한이라는 소재의 민감함 때문에 판타지임에도 가볍게 극을 끌고 가지 못하고, 어두운 색채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제작상의 어려움은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밝고 유쾌한 판타지 멜로물을 기대했던 시청자는 시대적 설정인 입헌군주제, 통일 한반도 등 가상현실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북한 소재 드라마가 같은 성격의 영화와 성패를 달리 한다는 것이다. 영화 ‘쉬리’ '실미도’ ‘공동경비구역JSA' ‘웰컴투동막골’ 등은 두 시간 남짓 압축된 시간 내에 남북 분단의 시련, 평화의 유토피아를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며 흥행성적을 거뒀다.
이에 반해 안방극장은 영화와 달리 긴 호흡 내내 남북대치 상황을 끌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따른다. 드라마가 무거운 주제인 정치 현실보다 남녀의 아기자기한 로맨스에 집중하는 것도 영화와 다른 시간적 제약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안방극장에서 북한 소재 드라마의 연이은 참패는 남남북녀의 로맨스에 정치 현실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는 소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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