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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행복은 채우는 게 아닌 비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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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10 22:30:02 수정 : 2012-04-10 22: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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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시골 마을에는 ‘별립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다. 비록 별립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달빛 아래 드러내 보이는 산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별립산은 가끔 내게 말을 걸어온다. 어떻게 살면 행복하냐고.

임태순 서울사이버대 교수·금융학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행복한 삶에 관해 말할 때, ‘물질’이나 ‘소유’의 개념이 무시된 채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아마도 설득력을 얻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한 삶이란 채우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비우는 데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편리성을 얻기 위해 하나라도 더 갖추기 위해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함을 감수하고, 비워내는 데 익숙해진다면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채워지지 않을까.

비워냄의 철학은 건강에도 적용된다. 과거엔 살이 찌고 배가 나온 이가 ‘사장님’으로 대우받고 부러움을 사던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너무 먹어 병을 얻는 일이 많다. 따라서 이제는 건강을 지키려 해도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많이 먹는 것보다 소식이나 단식과 같이 버리고 비우는 철학이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자발적 가난’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묘하다. 버리면 다시 채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손에 쥐었던 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도 어느 순간 확 놔버리면 오히려 다시 되돌아오는 사례를 종종 목격한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속이 편치 않으면 며칠이고 음식을 먹지 않고 위와 장을 비우고 나서야 다시 건강을 회복한다. 우리의 몸은 스스로 치유될 수 있는 자연치유력이 있기에 이를 작동할 수 있도록 비워줄 필요가 있다. 몸 안의 찌꺼기를 비워야만 새로운 시작이 열리기 때문이다.

더 채우려는 습관으로 이제껏 쌓인 내 삶의 찌꺼기를 서서히 걷어내기 위해 오늘은 안방을 독차지하던 텔레비전을 밖으로 내다 버렸다. 별과 달, 바람과 맑은 공기, 그리고 별립산만 있어도 이곳 시골에서의 삶은 넘쳐날 정도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립산이 내게 넌지시 물어왔던 질문의 답을 얻는 순간이다. 조금 불편하게 사는 삶이나, 소박하게 사는 삶이나 모두 ‘비어 낸다’라는 공통점 위에서 성립된다. 비록 버린다는 생각과 행동이 아직까지는 익숙지 않아 서툴고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듯 이내 담백한 기분을 가슴에 담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하나라도 더 많은 삶’에 의지하는 것보다 오히려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조금은 부족한 삶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처럼 보인다. 저 앞에 보이는 별립산이 비워낸 내 삶의 여백을 모두 행복으로 채워주듯 버림으로써 생긴 공간은 곧 행복으로 채워질 것이다. 만개한 봄꽃의 향기를 실어 산을 타고 마을로 내려오는 밤하늘의 맑은 공기가 오늘따라 더 시원하기만 하다.

임태순 서울사이버대 교수·금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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