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TV프로도 ‘향수’에 “30대가 주류로 자리매김” “20대로 돌아간 것 같아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
직장인 서원영(35)씨는 지난주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서 오래도록 추억에 잠겼다. 영화 속 삐삐와 헤어무스, 힙합바지, 필름카메라 등은 서씨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린 이 영화는 개봉 1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90년대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90년대가 막을 내린 지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복고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영화뿐 아니라 음악, TV 프로그램 등에서도 90년대가 ‘대세’가 되고 있다.

클론·듀스·터보 등 90년대 인기 가수들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20대 후반∼30대 중반의 ‘놀이터’다. 직장인 김모(33)씨는 “20대에 흥얼거렸던 노래들을 들으며 추억에 젖는다”며 “같은 구절이 반복되는 시끄러운 음악만 틀어주는 다른 클럽들보다 훨씬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위대한 유산’ 코너는 90년대 인기를 끌다가 지금은 잊혀진 추억의 스타와 놀이 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케이블TV에서도 M.net의 ‘문나이트 90’ 등 90년대 가수나 음악을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돼 화제를 모았다. MBC ‘나는 가수다’에서도 임재범과 이소라, 조관우, 장혜진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이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90년대 문화는 20대에게도 인기다. 90년대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여대생 황모(24)씨는 “2000년 이후에 중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90년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면서도 “90년대 문화가 다양성을 갖춘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1970∼80년대생들의 성장’, ‘아이돌 위주의 2000년대 문화에 대한 싫증’ 등으로 분석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90년대 문화의 인기는 10여년 전 10∼20대를 보냈던 사람들이 구매력을 갖춘 20∼30대로 성장하면서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데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수 단국대 교수(문화관리학)는 “문화의 산업화가 시작된 90년대는 예술성과 상업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며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상업성이 극대화됐고 이에 질린 사람들이 2000년대와 비슷하면서도 예술성이 있는 90년대 문화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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