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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3000발 연속발사 … 北 AN-2기 제압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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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3-28 10:59:11 수정 : 2012-03-28 10: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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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기 이야기] <16> 육군 특수무기 ⑦ 자주국방 서막 연 벌컨포 <上>
“정찰 헬기를 앞세우고 일렬로 이동하던 코브라 헬기 편대 앞에 가상의 적 표적이 나타나자 곧바로 20㎜ 벌컨포가 불을 뿜습니다. 분당 1000발 이상을 쏘는 벌컨의 화력 앞에 표적은 벌집이 되고 맙니다.”

우리 군의 주력 방공무기 가운데 하나인 20㎜ 벌컨포는 방공의 역사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대표 무기체계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뒤 1971년 6만1000명의 주한미군 가운데 2만여명이 철수하자 1970년대 자주국방의 서막을 연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20㎜ 벌컨은 1963년 미 육군이 개발에 착수해 1965년 실용화한 대공포다. 처음 이 무기를 설계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공대공 또는 공대지 사격을 위한 전투기 탑재용으로 개발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가장 현대화된 대공포였다.

앞서 소총을 소개하면서 언급한 ‘개틀링(Gatling) 건’이 원조격이다. 1881년 미군의 정식 제식무기로 채용된 개틀링 건의 특징은 여러 개의 총신을 하나로 묶어 발사한다는 데 있다. 서부영화에 이따금 등장하던 무기로 L자형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야만 총신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도 분당 200발가량을 쏘아대는 개틀링 건은 당시로선 경이로운 무기였다. 이후 개발자인 리처드 요르단 개틀링은 총신에 전기모터를 달아 1분에 3000발을 쏠 수 있는 새로운 총을 만들어냈지만, 너무 무거워 다루기 힘들었고 군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게다가 수랭 가스식 기관총이 나오면서 개틀링은 잊혀져 갔다.

개틀링이 다시 부활한 것은 제트기 전쟁의 시대를 연 베트남전에서였다. 1965년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는 미군 F-105기 2대가 북베트남 미그-17기의 기관포 공격에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미군은 총신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많은 양의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기관포에 눈을 돌렸다. 이에 따라 여러 개의 총신을 묶은 개틀링이 전투기 및 헬기 장착용으로 처음 사용됐고, 미 육군, 해군, 해병대까지도 같은 용도로 채용했다. 바로 20㎜ M61 벌컨포다.

재래식 ‘수동 개틀링 건’에서 ‘전동 개틀링 포’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벌카노스를 의미하는 벌컨의 전성시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우리 군이 가장 우려했던 것 중의 하나가 북한의 AN-2기였다. 이를 제압할 무기로 분당 최대 3000발을 연속 발사하는 벌컨은 우리 군에게 매력적인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국내에서는 1976년부터 자체생산(대우중공업 등 5개 업체)해 운용 중이다.

우리 군도 지상용 외에 항공기와 함정 등에도 탑재해 사용한다. 국내에서 생산된 벌컨은 견인형과 자주형이 있으며, 자주형 벌컨은 육군 기계화사단에서, 견인형 벌컨은 육·해·공군에서 저고도 대공방어 임무용으로 운용하고 있다.

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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