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깨어있어야 사태 해결
4·11총선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여의도 정치인들은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선거운동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의 일정은 탈북자 북송 반대 행사로 채워져 있다. 선거 지원에 나서 달라는 중앙당이나 지역구 의원들의 요청에도 “18대 국회 임기 마지막까지 탈북자를 위한 운동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이다. 5월 말이면 ‘정치인 박선영’이 아닌 ‘교수 박선영’으로 돌아가는 그는 “4년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입으로만 떠들 뿐 통일에 대한 비전도, 철학도 없다”며 “국민이 살아 있고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하는데 목소리 큰 사람들이 다수인 것처럼 행세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18대 국회 임기 내내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장했다. 민주당의 반대로 법사위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은 18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처지다. 그는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절대 과반의석을 갖고도 민주당 반대로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예견되는 민주당 후보 중에 18대보다 전투적이고 이념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법안)처리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그는 서울 종로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장기간 시위를 벌이면서 국민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그가 중국대사관 앞 시위뿐 아니라 탈북자를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이유다. ‘탈북자 북송에 반대하는 생명콘서트’가 열린 25일 오후 서울 청계천 청계광장 인근에서 박 의원을 만났다.

“지난주 베트남 등 3개국을 다녀왔고 다음주쯤 캄보디아 등 3개국, 내달에는 러시아를 갈 예정이다. 이들 나라는 중국과 다르게 공식적으로는 ‘탈북자가 없다’면서도 탈북자를 여러 루트로 (한국 등으로) 보내주는 나라다. 러시아의 경우 정부는 개입하지 않고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절차대로 탈북자를 원하는 국가에 보내주는데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이런 나라에는 정말 우리 정부가 물밑에서 ‘조용한 외교’를 펼치는 게 중요하다.”
―동남아국으로 입국하는 탈북자 현황 파악차 방문한 것인가.
“이번에 방문한 3개국 중 한 나라로 15명이 집단탈북한다는 제보를 받고 이들이 안전하게 넘어올 수 있도록 이민국, 대사관에 부탁하기 위해 갔다. 북·중 국경은 김정일 사후에 삼엄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탈북자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동남아국가로 넘어오는 과정은 20∼50m 간격으로 무장병 감시가 강화돼 무척 어려워졌다. 이번에도 모두 넘어오지 못하고 겨우 4명만 탈북에 성공했다. 이들은 불법월경자이기 때문에 벌금 등 정부 측과 협상해야 할 부분이 있다. 탈북 루트도 이번에 돌아봤는데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산길을 몇 시간씩 타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졸도하는 여성도 있다. 좀 더 안전한 루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개별 국가마다 협상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도 참석했는데 정부 측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나.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려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긴급면담을 요청했다. 2주 전에 요청했는데 29일에야 면담 일정이 잡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경을 넘다가 총에 맞아 죽거나 탈북자들이 잡혀가고 있다. 이런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중국 등 다른 나라 정상들을 만날 때 한 말씀이라도 해주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인권의 문제다.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 없이 립서비스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다.
“중국은 원래 ‘죽의 장막’이라지만 제가 볼 때는 수면 밑에서 움직이는 나라다. 그런 전제로 보면 상당한 변화가 있다고 본다. 원자바오 총리가 전인대 폐막 회견에서 정치개혁을 안 하면 문화혁명을 또 겪을 수 있다고 했는데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문제, 국제사회에서 중국 위상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본다. 중국 측 관계자를 만나면 북한이란 존재를 버거워한다는 걸 느낀다.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라고 할까.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 중국 정부도 탈북자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가 생긴 건 길게는 70년대부터다. 그동안 계속 ‘조용한 외교’한다고 하면서 중국의 힘만 키워 놓고 상황은 더 악화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돼야 ‘이제, 나설 때가 됐다’고 하겠는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중국 정부가 우리 측에 ‘160명 정도 탈북자를 붙잡았는데 한국으로 데려가겠느냐’고 제의했다. 김대중 정부가 끝내 답을 주지 않아 중국 정부가 이들을 북송시켰다. 이들은 공개처형되거나 정치수용소에 수감됐다고 한다. 당시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대북관계 때문에 이들을 외면했다.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탈북자 문제가 탈정치, 탈이념하지 않으면 풀 수 없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제법, 헌법에 명시된 인권보장 차원에서 중국 정부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미 하원에서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금지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북한인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우리 국회에서도 북한인권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처리되지 못했다.
“우리 국회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18대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으로 출발했고 민주당 의원들도 합리적인 분들이 많았다. 이번에 공천된 사람들을 봐라. 19대에는 (인권법 처리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새누리당 신지호, 전여옥, 진수희 의원 등은 모두 공천을 받지 못했다. 지난번 국회 상임위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 결의안을 처리할 때도 단식 중이던 제가 초췌한 모습으로 눈물로 호소했기에 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처리된 것이다. 남북 관련 문제를 그렇게 만장일치로 처리한 사례가 없다.”
―남한 내 정착한 탈북자에 대한 관심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이 이류, 삼류 시민으로 사는 한 남북통일을 이야기하는 건 난센스라는 지적이 많다.
“학생들한테 강의할 때도 ‘탈북자는 미리 온 통일이다.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정착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 내내 통일부 장관에 요구한 것도 ‘서독은 통일되기 전에 동독사람 100만명을 받았다. 우리라고 왜 못하나’라는 것이다. 당시 헝가리도 중국처럼 동독과 혈맹을 맺고 있어 넘어온 동독인을 (동독에) 넘겼다. 하지만 서독이 엄청난 외교적 노력을 해서 넘어온 동독인을 받도록 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는 조선족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 탈북자를 만나 보면 심지어 ‘이제라도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삼류시민이 아니라 사류시민이라고 한다. 한국인, 다음에 외국인 중 백인, 그다음에 조선족과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 출신, 마지막 계층이 탈북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통일은 어렵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시위, 단식농성을 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달라졌다고 체감하나.
“전망이 밝지는 않지만 변화는 분명히 있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정확히 3주 있었는데 시위현장과 저를 만나기 위해 다녀간 분들이 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저한테 소개할 때 제주, 목포, 창원, 울릉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셨다고 하더라. 국민 인식의 변화를 느끼지만 문제는 이 열기가 식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단식 중이던 어느 날 자정에 천막을 찾아와 말씀을 나눈 남성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분이 ‘지명수배 생활을 해봐서 쫓기는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안다. 탈북자는 나랑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라도 돕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면서 우시더라. 자기는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범죄를 저질러서 넉달 정도 도망다니다가 자수했는데 살기 위해 목숨 걸고 탈북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분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
―정치인에서 교수(동국대 법학과)로 돌아가면 탈북자 문제 지원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이슈화할 수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 19대 국회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가져 줄 의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당선 안정권에 탈북자 출신의 조명철 전 통일교육원장을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웠는데 그분께 특별히 부탁드리려고 한다. 학교로 돌아가면 정치인 박선영으로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역할이 줄겠지만 강의, 연구활동 외의 나머지 3분의 1은 탈북자를 위해 일할 생각이다.”
―총선 국면이 시작되면 대중 관심도 떨어지고 소속 정당의 선거 지원 요청도 많을 텐데.
“벌써부터 선거 지원 요청이 많다. 저는 교수 시절부터 헌법학자로서 우리 국민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학자적 양심으로 탈북자나 사할린 동포 등 재외국민 인권문제를 파고들었다. 국회의원이 된 것도 ‘살아 있는 학문’의 연장선상이다.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정치를 위해 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차인표씨 등 연예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탈북자를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윤항기 목사께도 27일 행사 참여를 부탁드렸는데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공인은 연예인이지 국회의원이 아니다.”
대담=황정미 부국장 bird@segye.com, 사진=남제현 기자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프로필
▲강원 춘천(56) ▲이화여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헌법학 박사 ▲MBC 보도국 기자 ▲가톨릭대 법대 교수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 ▲원자력안전위원 ▲동국대 법대 교수 ▲자유선진당 대변인, 정책위의장
▲강원 춘천(56) ▲이화여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헌법학 박사 ▲MBC 보도국 기자 ▲가톨릭대 법대 교수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 ▲원자력안전위원 ▲동국대 법대 교수 ▲자유선진당 대변인, 정책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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