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신중국의 청사진 설계한 혁명 운동가
중국식 사회주의 이념에 가장 충실했던 덩잉차오(鄧潁超·1904∼1992)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마오쩌둥과 함께 중국 공산당을 일으킨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부인으로, 현대 중국 설계자의 한 사람이다. 이 책이 쓰인 때는 199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제압한 1989년 톈안먼 사태의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흉흉한 시점이었다. 국내외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던 중국 공산당에 여론 무마를 위한 각종 선전물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그러던 차에 저우와 그 부인은 좋은 선전 소재였다. 지금도 중국 인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원한 총리 저우와 덩잉차오 두 사람은 공산당이 내세울 만한 인물로 손색없었다. 서민적인 풍모에다 공산당 내부 권력 투쟁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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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펑 지음/손승회 옮김/각권 3만1000∼3만9000원 |
덩잉차오의 전기를 기획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1차 사료로서의 가치와 함께, 주인공이 오늘날 현대 중국 설계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숙독할 만하다. 인민일보 기자였던 저자는 덩을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생전의 저우언라이를 마주대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저자에 따르면 1991년 7월 남색 무명천으로 만든 낡은 제복을 입은 덩은 베이징 중난하이 시화팅(西花廳)정원을 찾은 기자 일행을 불러앉히고 전기 제작의 의미를 주지시켰다.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항상 세심하면서도 정이 넘쳤다. 그녀는 기자에게 원래 전기를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지만 당조직이 결정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면서 몇 가지 엄격한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먼저 사실관계는 정확해야 하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유물론의 관점에 따라 전적으로 사실적으로 기술해야 합니다. 당시의 시대 환경과 시대발전 상황을 서술하여 개인과 역사를 관련시켜야 합니다.” 공산당의 애초 혁명 의식과 항일 투쟁의 역사적 관점에서 서술해달라는 요지였다.
덩은 마오쩌둥의 네 번째 부인인 장칭(江靑)과 함께 중국 공산당의 여걸로 잘 알려져 있다. 장칭은 마오의 숙청극으로 끝난 문화혁명 이후 권력에 도취된 나머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덩은 죽을 때까지 중국 인민의 존경을 받으며 ‘큰언니’로 불렸다.
덩은 1919년 우리의 3·1 운동 직후 벌어진 5·4 운동을 주도하고 공산당에 가입해 저우언라이와 결혼한 뒤, 공산당의 옌안 장정에 참가했으며, 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지내는 등 중국 공산당과 운명을 함께했다. 그러면서도 뿌리깊은 중국의 여성 비하 풍조에 맞서 여성해방운동을 일관되게 펼쳤던 여성 혁명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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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왼쪽)와 부인 덩잉차오(鄧潁超·1904∼1992) |
그녀는 남편 저우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재 한 줌도 남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덩은 남편 저우의 시신을 화장해 ‘농업용 비행기’에 유골을 싣고 혁명활동을 함께 했던 톈진(天津)과 보하이(渤海)만 상공에 유골을 뿌리기도 했다. 개혁 개방의 총진행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유골도 바다에 뿌려졌다. 덩은 중국의 경제 부흥을 위한 청사진에 처음 참여했던 여성이었다. 저우와 덩잉차오가 신중국을 설계하고 덩샤오핑이 실행에 옮겼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는 개혁개방의 청사진은 저우언라이, 덩잉차오, 덩샤오핑 같은 사회주의적 이념에 충실한 인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덩은 쑨원(孫文)의 부인 쑹칭링(宋慶齡) 자매와도 친밀했다. 덩이 쑹칭링을 공산당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낼 만큼 두루 신망이 높았다는 점이다. 공산당은 신해혁명으로 상징되는 중국 혁명의 대부 쑨원의 법통을 이어받겠다는 목적에서 쑹이 필요했던 것이다. 쑹은 또한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의 언니로 장제스에게는 처형이 되는 미묘한 관계이기도 했다. 덩은 쑹메이링과 함께 전쟁 고아 보육회를 설립, 53개의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전쟁 고아를 돌본 사실도 있다.
한편으로 덩은 공산당 독재 체제에 순응했던 인물이었다. 톈안먼 사태 당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보다는 당의 독재 체제를 지지하는 면모를 보인 것이다. 이런 부정적 평가에도 현대 중국 건설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덩잉차오는 기억할 만한 인물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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