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네서 맛본 장어구이와 함께 탕진해버린 에너지 다시 되찾게 해 새해 첫날 새벽이었다. 일출 시각 삼십 분 전에 집을 나섰다. 사는 곳이 부산에서도 해운대, 해운대에서도 달이 가장 먼저 뜨고, 가장 밝게 빛난다는 달맞이 언덕이기에 굳이 집을 나서서 해맞이를 할 것까지는 없었다. 달맞이 언덕은 곧 해맞이 언덕. 낮과 밤의 순서가 바뀔 뿐, 바다에서 떠오르는 둥근 빛 덩어리의 흐름과 광채는 여일하다. 그럼에도 집을 나선 이유는, 일출 무렵 바닷가 언덕의 신선한 공기 속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거닐면서 몇 년 전 처음 푸른 모래(靑沙), 아니 깨끗한 모래(淸沙), 아니아니 푸른 뱀(靑蛇)을 연상시키며 나를 매혹시켰던 청사포라는 포구에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떠오르는 첫 태양의 순결한 순간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출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 바닷바람을 견디며 언덕의 해송들 아래 여린 듯 강하게 퍼져 자라고 있을 방아라는 하찮은 풀의 향기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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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이네 |
그러고 나서야 하얀 김을 내뿜으며 사람들로 북적이는 수민이네마당 앞에 당도했다. 뜻밖에도 수민이네에서는 시루에서 막 쪄낸 백설기 한 조각과 뜨거운 유자차 한 잔을 해맞이 나선 사람들 손에 안겨주고 있었다. 그 집, 수민이네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부산으로 내려와 처음 방아라는 한국산 향초(herb)와 바닷장어구이를 맛보았던 식당이었다. 또한, 크고 작은 원고 마감을 할 때면, 마감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는 일상의 업무들을 신속하고도 힘차게 수행해야 할 때면, 또 먼 곳으로 씩씩하게 여행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면, 언덕을 달려 내려가 380년 된 수호송(守護松) 옆에 앉아 희고 담백한 바닷장어구이로 탕진해버린 에너지와 잠시 마비된 일상의 리듬을 되찾곤 하는 곳이었다. 일상생활과 창작활동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영역을 동시에 감행하는 나와 같은 사람, 그것도 육아와 가사가 숙명처럼 뒤따르는 여성에게는 매 순간 시간과 전투를 치러야 한다. 곧 한 인간에게 주어진 물리적인 단위의 하루는 24시간, 일상생활은 보통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고, 창작활동은 일상이 끝난, 그러니까 세상이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따로 창조해야 하는 것이었다. 창작 중에서도 소설이라는 장르는 창조적 지력(知力)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의 체력과 끈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길게 펼쳐나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직장 생활과 소설 창작, 그리고 가정이라는 세 가지 업(業)을 동시에 꾸리고 있는 나에게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리하여 각 영역을 어떻게 균형 있게 조율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삶과 문학, 그 둘을 윤기 있게 작동시키는 힘, 그 요체는 음식에 있음을 소설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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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 일출 |
“장어에는 방아가 빠지면 안 된다고 하셨죠?” 현관문을 열어 주자 효주 학생은 마치 꽃다발을 내밀듯 싱싱한 방아를 한아름 순남 씨에게 안겨 주었다. 오늘의 저녁 식사 요리로 순남 씨는 백포도주와 방아 잎으로 맛을 낸 바닷장어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중략) 순남 씨가 남쪽의 B시로 내려와 알게 된 식용 향초가 방아였다. 일산 새 도시에 살 때는 평소 민물장어를 좋아해서 임진강변에 있는 미루나무 집에 자주 가곤 했다. 양념으로 잰 장어를 숯불에 구워 생강 채를 얹어 먹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남쪽 기후 탓인지 이곳 바닷가에서는 흰 살을 그대로 석쇠에 구워 노릇노릇해진 장어를 초고추장을 찍어 방아와 풋고추 등과 함께 상추로 싸 먹었다. 방아는 순남 씨가 해 뜰 무렵 산책하러 나가는 해안가 주변에 사시사철 푸르게 자랐다. 처음 순남 씨는 양지바른 언덕뿐 아니라 포구의 기찻길에도, 골목에도, 심지어 보도블록 틈새까지 지천에 자라고 있는 키 작은 풀이 방아인 줄 몰랐다. 어느 날 보라색 꽃이 피어 해풍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한 송이 꺾었다가 방아 특유의 향을 맡았다.
-함정임, ‘저녁 식사가 끝난 뒤’(2012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함정임, ‘저녁 식사가 끝난 뒤’(2012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저녁 파티를 준비할 때면, 버지니어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처럼, 아침부터 가슴이 뛰고, 뛰는 만큼 마음이 분주하고, 마음의 가닥을 잡으려 잠시 걷고 싶고, 길모퉁이 단골 꽃집에 들러 꽃을 사고 싶고, 그러는 중에 내내 뭔가 근사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스스로 충만해지곤 했다. 아아, 하루는 얼마나 짧은가, 동시에 위대한가. 인생처럼! 짧은 듯 다채롭고, 꽉 찬 듯 어느 순간 덧없지 않은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봄, 봄에는 벚꽃이 달맞이 언덕길을 하얗게 물들였고, 나는 벚나무 꽃잎 난분분하게 흩날리는 봄날의 문탠로드를 천천히 걷곤 했다. 그렇게 하루는,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 어느 길목에서는 지금껏 살아온 이 길이 처음 마음에 품었던 그 길이었던가, 문득 뒤돌아보기도 했고, 지금껏 손끝으로 만들어온 이 요리가 처음 미각을 깨웠던 그 맛이었던가, 순간 되뇌기도 했다. 하여, 어느 날에는 노릇노릇하게 구워 방아잎에 쌓아 한입에 넣도록 내놓던 방식을 달리 궁구해볼 때도 있었다. 역시, 소설에서처럼,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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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구이 조각 |
소설가에게 삶은 허구(창작소설)의 기반이다. 삶을 벗어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삶이란, 곧 예술이란 소설이자 매순간 소설과 함께 떠나는 미지의 여행이다. 핵심은 뭍이든 물속이든 그곳만의 토양에서 자란 푸성귀와 열매들이다. 본질, 또는 본능이란 생래적이다. 혼(魂)의 부름이며, 대답이다. 예술은, 특히 문학은 거기에 가장 정직하게 조응하고자 애쓰는 작업이다. 그 중심에 음식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청사포 지천에 낮게 퍼져 자라는 싱싱한 방아와 그 아래 심해에서 힘차게 유영하는 바닷장어는 청사포만의 선물이자 축복이다.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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