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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코야니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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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3-01 22:19:35 수정 : 2012-03-01 22: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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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처럼 살아가는 인간 군상 담아낸 교향곡 그 어떤 내레이션이나 대사도 없는 갓프리 레지오 감독의 1982년도 다큐멘터리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는 영상과 음악을 비범하게 충돌시킨 문제작이었다. 인류의 창조, 그리고 파괴를 충격적으로 기록한 이 시각영상은 문명사회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 롤러코스터처럼 저속과 고속을 오가는 촬영, 질주감을 전신으로 체감케 하는 영상과 음악은 장대한 서사시로 압축됐다.

코야니스카시는 미국 호피족 인디언의 말로 ‘평형을 잃은 삶’을 뜻한다. 호피족의 여러 예언 중에는 특히 일본 원폭투하 같은 대목이 꽤나 유명했고,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바로 호피족의 성지로부터 채광한 우라늄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총 3부작 중 첫 작품인 본 편 이후 98년작 ‘포와카시’와 2002년작 ‘나코이카시’가 이어지는데, 이들은 각각 인간과 자연,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관계를 색다른 관점에서 짚어나갔다. 작업 중반 제작비가 모두 떨어질 무렵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직접 출자하면서 이 인내를 요하는 강행군은 계속된다.

고대 벽화와 계곡 이미지로 시작해 새턴V의 로켓발사를 클로즈업하는 장면과 황량한 사막, 네바다 원폭 등 현 문명의 이미지들이 비오듯 쏟아져내린다. 집적회로와 위성사진을 레이아웃한다거나 우리가 흔하게 보던 피사체들을 낯설게 담아내면서 이상한 절정으로 인도하는 비주얼 테러는 상영시간 내내 지속된다.

정작 스스로는 ‘미니멀리스트’라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시대를 대표하는 현대음악가 필립 글라스는 일반적인 클래식 법칙과는 차별된 반복구조와 리듬을 전면에 밀어붙인 ‘최소한의 음악(미니멀 뮤직)’ 이론을 확립했다. 이는 이후 전자음악 아티스트들에게 그대로 전이됐고, 반복이 주는 특유의 ‘최면효과’는 음악 고유의 영역과 인식을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필립 글라스는 처음 본작의 제의를 거절했지만 갓프리 레지오가 필립 글라스의 과거 음악들을 자신의 화면에 덧입힌 필름을 보여주면서 결국 영화음악작업을 수락했다. 그리고 이 작업은 필립 글라스의 정점에 위치하게 된다.

처음 발매된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일부 섹션만을 정리한 46분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이후 1998년 재녹음한 필립 글라스는 해당 앨범이 이전 사운드트랙의 확장판이 아니라 별개의 작품으로 인식되길 원했다. 영화의 챕터 순서대로 전개되는 그의 음악은 묵시룩적인 테마 ‘코야니스카시’를 시작으로 점점 증폭되다가 관악기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14분여의 ‘그리드’ 챕터에서 절정을 맞는다. 마치 ‘교향곡’ 같은 필립 글라스의 음악은 테크놀로지 아래 기계처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과 어울리면서 영상에 설득력을 실어준다.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 존재하는 이 ‘테크놀로지’는 그야말로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 세태와 테크놀로지의 힘에 삼켜지는 세상, 일상화되어가는 전쟁 등 부조리함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시점에서 작품은 불현듯 관객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는 우리가 위태롭게 서있는 현재의 위치를 묻는 두려운 질문과 같다. 인간의 기술을 과연 지혜라 부를 수 있을까. 그 의문만이 뇌리에 되풀이된다.

한상철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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