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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ny Place] 배재학당 역사박물관과 이화박물관

입력 : 2012-01-30 15:52:16 수정 : 2012-01-30 15: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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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은 지대했다. 특히 선교사들은 선교에 앞서 조선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펼쳐나갔다. 고종 역시 선교보다는 근대화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교육 사업을 더욱 장려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다.

■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서울 정동제일교회 앞 길림길에서 남쪽 언덕길을 오르면 3층짜리 붉은 벽돌집이 있다. 이곳은 2008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개관한 배재학당 동관이다. 1916년 세워진 것으로 덕수궁과 함께 서울 도심에서 드물게 그 당시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귀한 건물이다.

배제학당 역사박물관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학교라는 배재학당의 위상에 걸맞게 우리나라 교육사와 정동에 관련된 근대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자 역사의 현장이며, 시민들이 편하게 찾아와 쉴 수 있는 문화 쉼터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배재고등학교 교사에 신축한 배재정동빌딩과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다. 이 낮은 언덕에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고 있다. 김종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관장은 “역사를 어느 한 시점에 고정하지 말고 역사가 현대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근대사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좋지만, ‘나의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내가 120년 전에 태어났다면 배재학당에서 공부를 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 때 공간은 살아 숨 쉰다는 것이다. 

박물관 1층에는 1930년대 배재학당의 교실을 재현한 체험교실이 있다. 배재학당의 초기 모습에서부터 교육이념과 학생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을 시작으로 이승만, 주시경, 나도향, 김소월 등 우리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배재학당 출신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명예의 전당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김소월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2층에서는 근대화의 중심이었던 20세기 초 정동의 풍경과 선교에 앞서 신교육을 위해 노력했던 선교사들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배재학당 교사로 활동한 윌리엄 아서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5) 가족과 배재학당 설립자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일가의 유물을 통해 당시 선교사들의 일상과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를 짐작해볼 수 있다.

■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시작을 만나는 곳, 이화박물관

정동극장 맞은편 정동교회 담을 따라 걸으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담장이 나타난다. 그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주문이 보인다. 이화여고의 정문으로 사용되는 사주문 안으로는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이 있고 그 옆으로 들어가면 심슨 기념관이 있다. 심슨 기념관은 1915년에 지은 건물로 1922년에 증축했다. 현재 이화여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한국 전쟁 때 T자 건물의 아래 부분이 화재로 소실됐는데 이때 이화 학당의 모든 자료도 불타버렸다. 그 전까지의 졸업생 명단도 이때 소실되었다.

이화여고는 2006년 이화학당 설립 120주년을 맞아 심슨기념관에 이화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에는 이화 동문들이 기증한 유물과 함께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유관순 열사가 공부했던 교실을 그대로 꾸며놓기도 했다. 심슨기념관은 2002년 등록문화재 제 3호로 지정되었고,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T자형 건물의 아랫부분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한 공사를 마친 후 새롭게 개관했다. 복원에는 1900년대 초 건축에 쓰인 붉은 벽돌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지 않은 그 당시의 벽돌을 다행히 중국에서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심슨기념관 뿐 아니라 이화여고 전체가 우리의 근 현대사를 품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방문객들은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교정을 둘러볼 수 있다. 심슨기념관 뒤로 유관순 열사가 빨래를 하던 우물터와 ‘한국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기념비가 놓인 정원이 이어지고, 노천극장, 유관순동상이 세워진 잔디밭이 보인다.

노천극장 위 등나무 길을 지나 운동장 쪽으로 내려오는 등성이에는 한 남성의 흉상이 있다. 바로 이화를 다시 태어나게 한 신봉조 선생의 흉상이다. 이화학당과 담장을 나누었던 배재학당 출신으로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추방될 때 교장으로 부임하여 이화인을 길러낸 교육자이자, 여성의 존귀함을 알린 여성 운동가였다. 일본이 선교사들의 재산을 압류하고 강제로 폐교하려했을 때에도 자신은 일본에 항거하다 감옥에 가도 괜찮지만 학교는 어떻게든 문을 닫지 않고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 했던 교육자였다.

■ 담장을 마주한 길 끝에서 사랑을 상상하다

배재학당 학생들이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라는 교가 첫 소절을 ‘우리 배재학당, 이화학당 연애합시다’로 고쳐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배재학당을 졸업한 문학청년 김소월. 김소월이 배재학당 재학시절 발표하여 우리나라 서정시를 대표하는 작품이 된 <진달래꽃>은 이 곳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담장 끝자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의 후배들은 담장 하나를 마주하며 이화학당의 소녀들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네곤 했을 것이다. 돌아오는 봄에는 당신의 수줍은 서정시를 선물할 사랑하는 이와 이 낭만 어린 담장을 거닐어봐도 좋겠다.

쥬스컴퍼니 대표 이한호(ceo@comefun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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