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배우 최유하 ⓒ정다훈 기자 |
◆ ‘알로이지아 베버’와 배우 최유하의 인연
자유분방한 천재 음악가였고 아름다운 여인을 뜨겁게 사랑했던 평범한 청년 모차르트의 내면,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았을 법한 2인자 ‘살리에르’의 고뇌와 갈등이 더욱 강조된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이 올 2월 관객들을 찾아온다. 뮤지컬 ‘십계’, ‘태양왕’의 제작자 알베르 코엔, 도브 아티가 프로듀싱한 작품으로 2009년 9월 프랑스 초연 이후 15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이다.
배우 최유하는 ‘모차르트’의 운명적 첫사랑인 ‘알로이지아 베버’에 캐스팅 됐다. 김민주 배우가 번갈아 가며 공연한다. ‘모차르트’가 연주여행 중 독일의 만하임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할 만큼 뛰어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다. 그녀는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 ‘모차르트’의 재능을 이용해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 할 뿐 그에게는 관심이 없는 인물. 모차르트와 뜻하지 않은 이별을 한 후 그와 다시 만났을 때 차갑게 돌아서버리는 도도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다.
지난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최유하는 “캐릭터가 신비로웠다”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와 같은 카리스마가 매력적임"을 밝힌 바 있다. 연습에 한창인 그녀는 ‘알로이지아 베버’역에 대한 소감을 묻자, “힘들지는 않아요. 비중이 적든 많든 힘든 캐릭터가 있는데 이번에 맡은 역은 열정적 에너지를 주면 오히려 반감되는 역이죠. 쿨한 인물에 가까워요.” 란 답을 했다. 곧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몰랐을 때는, 알로이지아 테마곡 ‘빔 밤 붐’ 넘버 하나로 만족했다”는 말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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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 콘셉트 사진. 왼쪽부터 다비치의 이해리, 배우 김준현, 최유하, 고유진, 홍륜희, 신성우 ⓒ 펜타브리드 |
여자 배우라면 주인공 ‘콘스탄체’ 역이 더 끌렸을 듯.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녀는 “귀엽고 발랄한 ‘콘스탄체’는 제 성향은 아니죠. 극중 ‘콘스탄체’와 같이 순애보적으로 남자를 쫓아다니지는 못하는 걸요.”란 말로 ‘알로이지아’ 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추가적으로 지인이 자신에게 해줬던 일화를 전했다. “예전에는 제가 원하는 않는 역임에도 ‘주인공이니까 할 꺼야’ 이런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저와 맡는 역할을 하고 있대요. 성숙해졌다는 의미죠.”
한편,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관객들은 JYJ의 시아준수가 레게머리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채 출연해 화제를 모은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와 비슷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알고 보면 상당히 다르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락 음악에 뿌리에 두고 일렉트로닉 락(Electronic Rock), 오페라 락(Opera Rock), 팝 락(Pop Rock)등 다양한 락 장르의 음악을 모차르트의 클래식 음악과 조화시켜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만의 매력을 완성시켰다. 또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알로이지아’와 ‘살리에르’라는 캐릭터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모차르트 락 오페라’는 영화 같은 뮤지컬이란 느낌이 강했어요. 뜬금 없는 오버랩 장면등이 신선한 느낌을 줬어요. 영화감독 출신 연출(올리비에 다한)의 영향도 없진 않을 듯 하죠. 김호영 고유진 박한근이 연기하는 세 명의 모차르트가 배우별로 많이 달라요. 천재가 가진 광기가 잘 드러나는 한편 ‘촐싹’이는 캐릭터로도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촐싹’이는 그 장면에선 외로움도 함께 감지 돼 슬프게 다가와요.”
최유하는 ‘고급 음악’ ‘귀에 익숙한 가요 같은 느낌’이 골고루 섞여 있는 넘버가 매력적임을 강조했다. “음악적으로 보여줄 게 많은데, 우선, 여자 솔로 넘버의 뻔한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은 게 특이해요. 고급 음악을 즐기기 위해 오는 관객은 진짜 디바(소프라노 허진아)가 노래하는 클래식한 선율에 닭살 돋을 것이고, 즐기기 위해 오는 관객들은 현재 센세이셔널 한 가요 같은 느낌을 주는 다른 넘버가 귀에 더 와 닿을 것 같아요. ”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미술작품과 같은 대형무대를 배경으로 조명과 다양한 오브제를 덧붙여 만들어내는 생동감 넘치는 고급 스펙터클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프랑스 뮤지컬은 처음인데, 싱어, 액터, 댄서가 나뉘어져 있어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작품과는 다르게 배우가 연기와 노래, 춤을 도맡지 않고 무용수를 따로 둬요. 배우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다보면 토할 것 같은 뮤지컬이 많은데 프랑스 뮤지컬은 그렇지 않은 거죠.”
◆ B급 코메디의 매혹
‘노래 말고 남들보다 잘 하는 게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예상치 못한 답이 쏟아져 나왔다. “뻔한데 비꼬는 연기에 끌린다. B급 코메디죠. ‘주성치의 유머 코드’가 좋아요. 코믹한 상황 설정이 독특한 유머 코드를 불러오는 뮤지컬로는 잘 알려진 ‘오즈의 마법사’ 스토리를 확 뒤집은 뮤지컬 ‘위키드’, 여신 키라가 예술가를 지망하는 청년 쏘니를 만나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고 사랑에 빠지는 뮤지컬 ‘제너두’가 있내요.”
최유하는 아쉬움이 남기에 다시 하고 싶은 작품으로 ‘제너두’를 꼽았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지만, 잘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몇 개 작품의 장면 장면을 흉내 내는 최유하의 표정은 생기 가득했다. B급 코메디 작품으로 다시 한번 관객들을 찾아오길 기대하게 만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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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배우 최유하 ⓒ정다훈 기자 |
2010년 겨울은 최유하에게 힘든 시기였다. 뮤지컬을 쉬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시기였다고 한다. “내 건강상태는 왜 이럴까? 오늘 컨디션은 어제보다 못할까?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릿 속을 지배했죠. 언더, 스윙 하나 없이 원캐스트로 3개월을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연습시기까지 합치만 6개월 가량 되는데 압박감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뮤지컬 ‘엣지스’ 는 캐릭터가 아닌 스스로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그녀에게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작품 속 캐릭터와 푹 빠져 지나는 스타일인 그녀인지라 남들보다 고충은 더 심했다. “‘엣지스’ 끝나고 절망감에 빠졌어요. 당분만 무대에 서기 보다 막역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토플학원에 등록 한 후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쭉 수업을 들었죠.”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눈망울이 촉촉하다. “당시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친구들과의 약속 한번 안 잡고 공연에 올인 했어요. 노심초사 예민한 성격 때문에 애꿎은 남동생에게 화도 많이 냈구요.”
좀 더 완벽해지고 싶었고 관객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로 남길 바라는 배우 최유하의 바램이 스트레스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방황의 시기를 거친 뒤 그녀는 뭔가를 깨닫게 된다. “예전엔 관객들에게 기(氣)를 다 뺐긴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수백명의 기를 받아 행복한 직업이 뮤지컬 배우구나 라고 느끼고 있죠. 어떻게 이걸 그만 둘까?란 말이 절로 나와요”
◆ 내 고민의 시발점, 뮤지컬
최유하의 인생에 있어 힘든 것도 좋은 것도 결국은 ‘뮤지컬’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사랑에 빠지면 오직 상대 생각뿐이라고 하는데, 저는 연애 하면서도 잠시 생각이 안 날 때가 많아요. 반면에 뮤지컬에 대한 생각은 단 한 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어요. ‘쾌감’도 무시 못하죠. 세달 반 가량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던 노래 혹은 연기가 어느 순간 잘 되면 저 혼자 파티를 해요. 그동안의 고통이 싹 사라지는 거 보면 뮤지컬 속엔 아드레날린이나 마약 같은 게 들어있는 게 분명한 것 같아요”
‘여배우는 35세가 되면 피크가 온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언제 피크 오지?’라며 그녀가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할 무렵 ‘배우가 꼭 노래나 연기만 잘 한다고 해서 유명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고 결정타를 날렸다. “제 성격이 잘못 보면 버릇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사회성도 제로고 술도 못 먹어요.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는데, 저희 집에 전혀 다른 성격의 강아지가 두 마리 있어요. 한 마리는 주인에게 살살 안기면서 애교를 부리는 ‘알랑방귀’ 스타일 강아지라면, 다른 한 마리는 조용히 뒤에 있는 소심한 강아지에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잘 챙기는 강아지가 누구인가 봤더니 ‘알랑방귀’ 강아지인 거에요. 두 성격 중 어느 하나가 나쁘다 안 나쁘다를 떠나 조용히 뒤에 있는 제 성격을 돌아보게 된 거죠. ”
‘상대 남자 배우가 쓸데없는 스킨쉽 을 하면 집에 가서 운 적도 있다’는 지난 시절의 일화를 전하며 철없고 어렸다고 회고하던 그녀는 “30대의 길목에 접어들며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고 변화를 밝혔다. 물론 최배우의 매력은 도도한 듯 솔직함. 진정성 있는 사고에 있다. 기자를 인터뷰로 이끈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매번 그녀는 이 무대가 생애 마지막 무대인 듯 애절하고도 절박함을 담아 무대에 섰다. ‘최선과 최고의 노력’ 한올 한올이 가슴으로 감지되는 현재의 모습이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뮤지컬 배우의 자질은 타고난 것이라고 말하던 그녀, “자질을 타고 나는 게 제일 중요하죠. 하지만 타고난 자질은 길어야 3년을 못 가는 것 같아요. 유명 소프라노 조수미도 티처에게 배우고 있는데, 배우라면 끝까지 선생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년여 간의 뉴욕 유학생활을 통해 한 뼘 성장한 그녀는 2008년 이후 계속 레슨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노래, 연기, 춤 등 체크 받으려고 해요. 간혹 레슨 받은 걸 실제 무대에 자랑하기 위해 잘못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지적도 다 공부가 된다고 생각해요.”
◆ 배우 최유하와의 특별한 인연
배우 최유하는 2005년 '풋루스'에서 시골 목사의 딸 에리엘의 친구 '러스티' 역으로 나와 뮤지컬과 인연을 맺었다. 기자는 배우 최유하와의 첫 인연을 그녀의 데뷔작으로 맺게 됐다. 그때의 느낌은 '열정에 가득찬 신인 배우'라고 머리에 아로새겨졌다.
숨겨진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인터뷰를 위해 40일을 기다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뷰를 하겠다는 프로포즈를(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 제작발표회가 다 끝난 뒤 서울 플라자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배우에게 직접 한 후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로부터 약 40여일의 시간이 흐른 후 성사된 인터뷰다. 의도적으로 인터뷰를 하겠다는 계산된 생각, 홍보를 위한 기획사의 요청 같은 게 전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호감에서 시작된 인터뷰란 의미이다.
‘배우와 어떤 이야기를 할까?’ 40일간 고민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카카오톡’ 친구란에 ‘최유하’란 이름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질문을 하나 하나 만들어갔다. 머릿 속에 그려본 배우 이미지와 다르지 않아, 아니 거의 일치해 행복했던 인터뷰 시간이었다.
인터뷰 말미,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 ‘살리에르’ 역으로 캐스팅 된 배우 강태을씨를 인터뷰 하면 어떨까?‘란 질문을 던지자 솔직한 최배우는 “살리에르 역과 부딪치는 씬이 없어서 아직은 친해지지 못했어요. 그런데, 대구방송 촬영기자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작품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어요.”라며 긍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간혹 배우가 보는 배우의 모습이 더 정확한 법. 제작발표회 때 우연히 마주친 배우가 한명 더 있었는데, 바로 배우 강태을이다. 배우 최유하의 느낌과 비슷했다고 하면 실례가 될까. 이변이 없는 한 강태을 배우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 할 듯하다.
공연 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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