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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前 헌재소장 김용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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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1-09 00:32:09 수정 : 2012-01-09 00: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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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법관에게 옳은 재판을 원할 뿐 정치 바라지 않아"
"SNS 글 올린 법관 좌파든 우파든 간에 글 게재한 것 자체가 비판받는 건 당연"
법조계 원로인 김용준(74) 변호사는 ‘컴맹’에다 그 흔한 휴대전화조차 없다. 책을 사면 흔한 전단지로 손수 싸서 펼쳐본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지만 헌법재판소장까지 역임한 그의 삶 자체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학창시절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할 정도로 다리가 불편한 그였지만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당당히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사법고시(9회)에 최연소로, 그것도 수석으로 합격했다. 19살 나이에 장애를 딛고 이룬 일이라 ‘신동’ 소리까지 들었다.

22살 때 대구지법에서 법복을 처음 입은 후 서울가정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소장 등 40년간 공직에 있었다. 후배 법조인들은 그를 ‘신선’이라 부른다. 변호사 생활 10년을 포함해 반세기 동안 법과 원칙을 지켜온 데 대한 평가다.

일부 법관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로 인해 법원이 비판받던 지난해말 여의도의 작은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그간의 연륜과 지혜는 얼굴의 주름만큼 쌓여 있었다.

그는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법원이 말썽의 진원지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국민은 법관에게 옳은 재판을 원할 뿐 정치를 바라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김용준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장과 대법관을 지낸 원로 법조인이다. 그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면 법을 고치는 게 맞지만 무엇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법을 안 지키면 손해를 보는 사회가 올바른 정의사회”라고 강조한다.
허정호 기자
◆법관도 사람이지만 생각이 외부로 표출되면 문제될 수 있어


그는 “내가 법관 할 때에도 말썽이 생기고 그랬지만 그 정도와 비율이 문제다. 기본에 맞지 않는 판결도 보이고, 근래에 심해진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최근 법관의 잇따른 SNS 의견개진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극단적으로 머릿속으로 공산주의를 지지한다고 해도 처벌할 수 없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면 불법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특히 그는 문제의 글을 올린 법관이 우파든 좌파든 간에 글을 게재한 것 자체가 비판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일반 공무원이 그런 글을 올렸다면 법관만큼 문제되지는 않겠지만 법관은 재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SNS를 사적공간으로 볼지 여부에 대해서도 “거기에 기재된 건 개인 의견이겠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상 사적 영역으로 볼 수 없다”며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데도 사적공간이라면 신문도 사적공간이냐”고 반문했다.

그의 성향이 궁금해졌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딱히 중도라고 하기도 그렇고, 우리 세대는 자라온 과정을 봐도 조금이라도 오른쪽일 것”이라고 말했다.

좌우를 나눠 무조건 비판하는 현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서로 정책적으로 접근했고, 그래서 (좌우로 나누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때문인지 진보성향의 우리법연구회에 참여한 법관들의 생각을 탓할 순 없다고 했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게 무슨 문제냐”는 것.

하지만 좌우가 겹치는 사건을 맡았을 때 어느 한쪽이 불안감을 느끼는 걸 용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떤 연구를 하든, 어떤 성향이든 그게 외부로 표출되는 순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날이 갈수록 법원의 권위가 추락하는 형국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김 변호사는 “투명한 절차에 따라 상식에 맞는 판결을 하면 법원의 권위가 바로 선다”고 말했다.

◆김영삼(YS)과의 인연에도 5·18 특별법 위헌 의견 내

공직을 떠난 지 11년째가 됐지만 여전히 그는 스스로 ‘공인’으로 여기고 처신을 조심한다. 그는 1994년 자신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소개했다.

“대법관을 마치고 7월 말쯤 북유럽 여행을 떠났는데, 8월 중순쯤 공항에 마중 나온 아들이 ‘내일 대통령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고 전하더라. 그냥 대법관 퇴임 격려 차원인가 했는데 가보니까 그게 아니었어.”

귀국 다음날, 청와대의 작은 방에서 독대한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하던 일이랑 비슷한 자리를 줄 테니 절대 비밀이다”라고 했고, 그제야 헌재소장일 것이라고 미뤄 짐작했다고 한다. 그는 “뭘 시켜 줄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지 않겠느냐”며 크게 웃었다.

그는 그해 9월1일 2대 헌재소장에 취임했다. “대법관 마치고 법무법인 여러 군데 얘기가 있었는데 대개 큰 곳은 질서가 있어서 답답하잖아. 그래서 율촌에 가기로 하고 사무실도 마련했는데 덜컥 소장이 된다는 거야. 비밀을 지켜야 하니 율촌에 말도 못하겠고 참 난감했었지.” 그가 헌재소장을 마친 뒤 10년간 율촌에 몸담은 이유다.

소아마비협회 이사인 그는 헌재소장이 되기 2년 전 장애인 올림픽 선수 합숙장소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을 만난 게 유일한 인연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대통령 되시기 전인데 내가 걸음이 느려서 뒤처지니까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려 주시더라. 그거밖에 인연이 없어.”

법원행정처장·국회사무처장과 달리 차관급이던 헌재 사무처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것은 당시 그가 대통령께 요청한 결과였다. 그는 공직을 떠난 뒤 김 전 대통령을 딱 한 번 찾아갔다. “누가 천거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묻지는 못했지. 대신 오히려 내게 섭섭해하시더라.”

그가 헌재소장에 취임한 이듬해 5·18 특별법 위헌제청 사건에서 위헌 의견을 낸 데 대한 반응이었다. 당시 5(위헌):4(합헌)로 위헌 정족수(6명)를 못 채워서 가까스로 합헌이 됐는데, 이 결정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단죄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결정으로 ‘법치도 세우고 나라도 살렸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헌재소장이 위헌의견을 내서 헌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헌재소장을 시켜준 대통령이지만 공직을 떠난 뒤에도 쉽게 찾아가긴 힘들었다”며 “지금도 대법원이나 헌재에 연락 한 번 안 한다”고 말했다.

◆생수를 주한 외국인한테만 팔겠다니…그게 말이 되나

그는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 현실과 괴리가 있거나 예외조항이 꼭 필요하다면 법을 고치는 게 맞다는 것이다. 1994년 대법관 시절, 생수 시판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려 10년간 끌어온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주한 외국인한테만 생수를 판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에 와서 보면, 초등학생도 생수를 마시는데….”

헌재소장 말년인 2000년에는 과외교습을 전면 금지한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파장이 컸다. 그 판결은 사교육비가 천정부지인 요즘 다시 주목받는다. 그는 “당시 결정으로 과외가 성행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도 과외를 금지하고 있다면 불법적인 행태가 더 많았을 것”이라며 “국민이 지킬 수 없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놓고 처벌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법과 선거법도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치고 세법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각종 선거법도 제대로 지킬 수 있게 만들어야지.”

그는 법을 만든 뒤에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법치가 무너진다고 언급했다. 도로교통법을 만들어 놓고 재래시장 주차단속을 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논리다.

그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지하철 무임승차 단속을 천명한 뒤 살인사건 희생자가 2500명에서 250명으로 줄어든 사례도 언급했다. 법치는 가장 쉬운 기초질서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되고, 사소한 조치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법치 원칙은 거래비용을 낮추고 이로 인해 경제도 활성화한다. 로마가 1000년 넘게 지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법을 안 지키면 손해를 보는 게 당연한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며 “전통적으로 유교적 관념에 의해 덕치를 이상화하다 보니 법치가 저평가돼서 그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김용준은…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9회 고등고시 합격 △대구지법 판사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법무법인 넥서스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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