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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家 사람들] 무용을 보러갔다…익숙한 노래방 풍경에 웃음과 성찰이 한방에

입력 : 2011-12-23 11:46:37 수정 : 2011-12-23 11: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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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팩 다장르 융합·통섭 프로젝트(HanPAC MixedPlay) ‘마이크’

한팩 프로젝트 '마이크 microphone' 연습사진

무용이란 관람자의 시각에 따라 지극히 ‘다중적’으로 이해되게 마련이다. 여기서 ‘다중적’이란 해석의 여지가 많은 혹은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의미도 포함 돼 있다. 콜라주처럼 모여진 이미지의 조각들을 각자 나름대로 맞춰나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는 무용을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한국공연예술센터의 2011년 네 번째 무용 ‘마이크’(예술감독 및 안무 안애순· 드라마투르기 이양구)는 유머와 상징이 간결하게 사용 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60분간 공연의 막이 내린 뒤 떠오르는 생각 하나, ‘연말 회식 후 자주 찾게 되는 노래방 풍경’을 제 3자의 시각에서 풀어낸다면 이렇겠구나 하는 점이다. 사회적 자아를 앞에 내세운 채 마이크 앞에 서지만 점차 본질적 자아의 꿈틀거림에 가면을 벗게 된다. 마이크를 잡은 손은 권력자의 그것마냥 발악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마이크를 잡지 않은 타인의 손은 자신이 곧 불러야 할 노래의 예약 버튼을 누르기에 바쁜 것처럼 상대의 외로움과 소외감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노래방 풍경 말이다.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한 이양구 연출이 “가라오케(노래방)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 말이 자꾸만 떠오른 것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공연예술센터 다장르 융합·통섭 프로젝트 ‘마이크’는 크게 세 장면으로 구성됐다. 도입부문에서 스튜디오 공간 속 무용수들의 모습을 비춘 뒤, 기호화되고 분절적인 차가운 움직임을 1장에 불러냈다. 곧 2장에서 마이크와 인간의 접촉으로 시작된 아날로그적 몸짓, 변신과 전이, 주체적 변신을 단계적으로 표현한 뒤 3장에서 자유로워진 몸짓이 다시 한번 왜곡과 변형을 겪게 됨을 한편의 무용에 담아냈다.

이번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마이크는 ‘소통의 도구’이자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시스템’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사용됐다.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내적 갈등이 ‘마이크’를 통해 표출되는 식이다. 마이크와 한 인간의 만남에서 출발한 공연은 미디어영상과 음악, 무대의 구조를 통해 점차 인간들의 기억 속, 상상 속 공간을 구축했다.

작품은 세드라베 무용단원인 예효승을 포함한 10명의 무용수들이 문훈·김종석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소리가 다다를 수 없는 방’안에서 현대인의 불안감, 욕망등을 움직임과 함께 선보이는 형태로 진행됐다. "테크닉 혹은 기교를 자랑하지 말고 감정을 표현하길 원했다"고 말한 안애순 감독의 의도대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시각을 사로잡는 테크닉적인 춤이기보단 불안한 내면의 소리처럼 들려지고 보여졌다.

 드라마틱한 몸의 질감을 과감없이 보여주는 예효승은 제 1장 ‘마이크와의 만남’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마이크와 무용수의 만남으로 촉발된 굉음은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귀, 머리, 목, 복부 등에 마이크를 갖다 된 후 문지르거나 타격을 가한 후 나오는 여러 소리들은 그 자체로 한편의 노래이자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장면이 보다 강렬한 까닭에 후반 수십개의 마이크가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은 예상보다 감흥이 크지 않았다. 

한팩 프로젝트 '마이크 microphone' 연습사진

무용수들의 뚜렷한 움직임 변화는 스토리텔링 구축에 확실히 도움이 됐다. 도시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기호화된 몸짓은 마네킹 혹은 로버트의 움직임처럼 전달됐다. 시스템화 이전의 아날로그적 몸짓은 원시세계의 오랑우탄 혹은 자유로운 영혼의 움직임처럼 다가왔으며, 곧 온 몸으로 리듬을 타며 음악에 몸을 맡기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지막은 거대한 ‘마이크’ 의상을 뒤집어 쓴 무용수 김정선이 한국전통무용을 기반으로 한 현대춤을 추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이사이 들을 수 있는 보컬 남상아의 발악적인 노래는 극중 메시지와 잘 어울렸다.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최대치로 끌어올려지는 장면은 핸드마이크 선과 스탠드마이크 기둥이 한데 뒤엉키는 순간이었다. 무용수들이 각자의 핸드마이크를 통해 결코 소통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고 괴성을 질러대는 장면이 연출됐다. 곧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입모양으로만 그들의 고통과 우울감 소외감을 감지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관객에게 생각할 숨통을 틔어준 것이다.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 관객에게도 흥미있는 무용으로 보인다. 함께 관람한 딸은 “처음엔 호두까기 인형 춤을 추다 곧 무술 춤과 엉덩이 춤을 춘 무용수들, 팔 꺾기를 선보인 오빠(예효승), ‘엄마’라고 소리지르는 장면, 사람 몸과 부딪쳐서 나오는 마이크 소리등이 신기하다”며 눈을 빛냈다. 이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마이크가 이야기를 한 무용”이라며 자신만의 감상평을 내놓기도 했다.

아쉬움도 분명 있다. 멀티미디어의 친절한 개입이 있을거라는 보도를 접했지만 미디어 아트(더 미디엄 김태은·유원준·류임상)의 존재는 극 이해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 듯 하다. 미디어를 통해 감지할 수 있는 무용수들의 몸 동작과 전체 맥락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한팩이 제작한 미디어 퍼포먼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과도한 영상 사용으로 아쉬움을 남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팩의 ‘새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번 공연에 참여한 차세대 안무가 8명(김보라, 김재승, 배준용, 이범구, 박소영, 나연우, 황수현, 지경민)의 에너지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은 22일과 23일 양일간 공연된다. 첫날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 돼 객석은 꽉꽉 들어찼다. 2011년 꼭 봐야 할 마지막 무용공연은 ‘마이크’로 정하는게 어떨까.

공연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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