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이 지옥이기에 그나마 평온한 것이다. (…) 조선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임금이란 자리다!”
최근 시청률 20%를 넘나들며 인기를 끌고 있는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쏟아낸 대사다. 답답한 시절을 지나가는 대중은
이 속 시원한 왕의 말에 뜨겁게 호응하는 형국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리더십이 화두다.
최근 시청률 20%를 넘나들며 인기를 끌고 있는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쏟아낸 대사다. 답답한 시절을 지나가는 대중은
이 속 시원한 왕의 말에 뜨겁게 호응하는 형국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리더십이 화두다.
세종이 왜 한글을 만들어야 했는지에 포커스를 맞추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 드라마 속 세종이 보여주는 소통의 리더십에 시청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드라마 속에서 세종은 “글자를 알아야 백성도 힘이 생긴다. 싸우자, 싸워 보자”고 한글 창제작업을 독려한다. 이 사극은 ‘세종은 왜 글자를 만들어야 했을까’에 집중하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글자를 몰라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만들었지만 문자(한문)를 독점한 기득권층의 견제에 맞서 한글을 만들고 반포하기까지 세종의 힘겨운 싸움과 고뇌가 그럴싸하게 그려진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박현모 연구실장은 “세종의 취임사(즉위교서)가 시인발정(施仁發政·어짊을 베풀어서 정치를 세우겠다는 뜻)이었다. 백성들이 뭘 원하는지 파악한 다음에 그에 맞는 제도나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세종의 리더십은 지금 우리 사회가 목말라하는 것”이라면서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세종처럼 (발전과 개혁의) 시계를 여러 개 돌리는 방식, 인재를 선발해 뒤에서 밀어주는 스타일의 국가 경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세종이 무(武)가 아닌 문(文)으로 어떻게 선대와 기득권 세력을 극복하는지 그려내는 드라마의 연장선상에서 ‘용비어천가와 세종의 국가경영’은 ‘용비어천가’를 편찬한 의도와 영향력을 분석한다. 이 책을 총괄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박병련 교수는 “‘용비어천가’는 단순한 왕실미화 텍스트로 오해되며 권력자를 칭송하는 행동을 비꼬는 데 인용돼 왔지만 원래 세종대왕이 훈민정음과 함께 기획한 회심의 프로젝트였다”면서 “좋은 정치를 향한 세종의 ‘각오’를 담은 작품이자 집권세력의 단결과 반대세력의 포용을 통한 통합의 정치 노선을 따르겠다는 천명”이라고 강조한다.
박현모 박사는 “‘용비어천가’는 수성의 시기인 세종 대에 역사 속에서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를 시와 산문으로 편찬해 역사책을 두루 보지 않고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이야기 책으로, 노래로 부르게 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세종의 문화정치와 효과적인 지식경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극 PD들은 “역사는 어느 시대를 말하는가보다 어느 시대에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권에 따라 다르게 부각되는 세종의 면모는 이를 증명한다. 박현모 박사는 “총 552편의 세종 관련 논문이 나왔는데, 예전엔 한글창제나 과학기술 분야의 박제화된 연구가 주종이었지만 요즘은 리더십 과정에 대한 연구가 폭증하고 있다”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방영된 드라마 ‘대왕 세종’이 자애롭기만 한 성군을 그린 이상적인 드라마였다면 요즘 ‘뿌리깊은 나무’에서 욕지거리를 하며 관리들을 질타하는 극화된 세종의 모습은 정권 말기 실망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군주의 책임지는 자세를 이야기하는 세종의 드라마 속 발언에 시청자는 속이 후련해진다. 정조도 마찬가지다. ‘정조의 치세어록’에는 국민이나 신하와 의사 소통방법이 제한됐던 18세기,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권위를 벗어버린 채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던 정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저자인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과)는 “다양한 글을 써서 반포하고 자주 대궐 밖으로 나가 백성의 의견을 청취하며 신하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던 정조는 한글로 된 윤음을 함께 반포함으로써 전 백성을 상대로 설득하고 교육하며 국정의 현황과 행정의 실상을 알리도록 했다”고 강조한다. 이런 정조의 어록들은 특히 작금의 위정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사대부는 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기어코 ‘큰일’(국사)을 해내는 법이다.”
“해마다 나 자신을 점검하지만 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있다고 해도 결국은 공이 과오를 가리지 못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두렵고 떨리지 않겠는가.”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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