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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 유가족 '아물지 않은 고통'

입력 : 2011-11-21 08:09:51 수정 : 2011-11-21 08: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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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만 유가족 9만여 명…주변 시선에 죄책감 시달려
남편 자살 충격 극복 40대女 “15년간 갇힌 동굴서 나온 듯”
지난 17일 오후 3시쯤 인천 주안역 부근의 한 커피숍에 평온한 인상의 한 중년 부인이 들어섰다. 16년 전 남편의 충격적인 자살 이후 모진 삶을 살아온 정현주(가명·46)씨다. 한 쪽에 있던 사회복지사 2명이 반갑게 맞았다. “너무 늦었죠?”라며 말을 건네는 정씨의 표정에는 자살 유가족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에 정씨는 “학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면서 바쁘게 보내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음료를 앞에 놓고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은 인천광역시자살예방센터 자살 유가족 모임이다. 회원은 고작 2명에 불과하지만 이날은 정씨만 참석했다. 정씨는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빠지지 않고 참석해 온 회원이다.

가족이나 지인의 자살로 충격에 빠진 자살자 유가족의 치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이들을 보는 사회의 왜곡된 인식과 홍보 부족 등이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가족의 자살로 유가족들은 주변의 시선과 죄책감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다”면서 적극적인 치유를 조언하고 있다.

20일 생명의 전화 자살자유가족지원센터 등에 따르면 현재 자살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곳은 생명의 전화,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등 4곳이 고작이다. 더 큰 문제는 정씨처럼 모임에 적극 나서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생명의 전화의 경우 매달 7∼8명이 참여하지만 다른 곳은 한 달에 2∼3명만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자살예방센터와 자살예방협회는 참석자가 적어 사업이 일시 중단됐다.

지난해 자살자는 1만5566명. 하루 평균 43명꼴이다. 이처럼 자살자는 줄지 않고 있지만 유가족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사회가 자살자 유가족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탓이 크다. 유가족 모임은 정씨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아픔을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다. 정씨도 밝고 긍정적인 태도를 되찾게 된 것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우연히 자살 유가족 모임 포스터를 보고 인천 자살예방센터를 찾은 것이 전환점이 됐다.

정씨는 “남편의 자살 이후 저 역시 피해자였지만 죄인처럼 살았다. 아이는 친척집에 보내고 우울증과 수면과다에 시달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모임에 나오면서 함께 한 사람들과 “사소한 경험을 나눴을 뿐이지만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생각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인천광역시 자살예방센터 최상미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대부분의 유가족은 가족 죽음이 자기 탓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주변 시선 등의 이유로 참여가 적어 안타깝다”며 “유가족 역시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만큼 이런 모임이나 전문의 상담 등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나·조성호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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