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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행정도우미 “우리가 마네킹이냐”

입력 : 2011-11-19 07:18:53 수정 : 2011-11-19 07: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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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색맞추기’ 사업 비난 목소리
제주도의 한 주민자치센터에서 행정도우미로 일하는 김익훈(37·가명)씨는 2007년부터 월급이 제자리다. 한 달 급여 85만5000원에서 4대 보험료 등을 떼고 나면 실제로 그에게 들어오는 돈은 약 71만원.

그는 “아내와 아들을 부양하기 벅차 부모님과 함께 생활한다”며 “아이가 자랄수록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장애인 일자리 증대를 위해 추진 중인 장애인행정도우미 사업이 겉돌고 있다.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근무시간을 줄이는가 하면, 하는 일도 복사 등 잡무 위주다. 장애인 소득 보장 및 사회참여 증진, 자아실현 기회 확대라는 애초 사업 취지와는 거리가 멀고, 전시성 구색맞추기 사업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장애인행정도우미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사업이 처음 시작된 2007년부터 1인당 85만5000원으로 5년간 요지부동이다. 대신 매년 조금씩 인상되는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정부는 행정도우미 근무시간을 줄이는 편법을 쓰고 있다. 애초 일일 8시간 주5일 근무였던 것이 2009년 주5일 7시간으로 바뀐 데 이어 올해에는 주4일 8시간제로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개발원 관계자는 “한정된 예산 하에서 일한 만큼 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물가 인상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임금으로 살아가는 행정도우미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경기 안성에서 근무하는 김민한(50·가명)씨는 “급여로 출퇴근 차비를 쓰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며 “최하 말단급 일만 계속 시키면서 급여도 그대로니 맥이 빠진다”고 말했다.

주4일 근무에 따른 어려움도 많다. 경남 거제시에서 일하는 유상수(37·가명)씨는 “원치 않게 주4일 근무를 하다 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소통도 안 되고 오히려 눈치만 보인다”고 털어놨다. 그는 “바쁠 때는 금요일에 나와서 일하기도 한다”며 “동료들이 바쁜 게 뻔히 보이는데 무급이라고 혼자 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장애인이 사회복지업무를 직접 챙겨 장애인복지의 능률을 올린다는 사업 취지도 퇴색한 지 오래다. 김익훈씨는 “말이 사회복지 업무보조일 뿐 복사, 청소 등 대부분 단순업무만 시킨다”고 했다. 그는 “다른 행정도우미들 얘기를 들어보면 주민센터에서 하루 종일 마냥 앉혀만 놓는 곳도 많다”며 “어차피 우리는 홍보용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행정도우미들의 소통 공간인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서도 “내가 하는 일은 졸거나 인터넷 서핑, 아주 가끔 복사나 서류정리, 다른 분들 일하는 모습 구경하기. 왜 뽑았는지, 제가 무능력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공무원들은 우리가 그저 조용히 지내기만 바랄 뿐” 등의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부는 올해 3500명의 장애인행정도우미를 1년 계약직으로 고용한 데 이어 내년에도 비슷하거나 더 늘어난 규모로 채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아 내년에도 근무시간이 또다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장애인개발원은 “일단 내년에도 일인당 지원금액이 동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근무시간을 줄이지 않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유태영·서필웅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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