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헌법재판관·대법관 내정자 등으로 맹활약 “고된 공부 끝에 어려운 관문을 뚫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1984년 11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당. ‘여성 법조인 1호’ 이태영 박사(1998년 작고)가 그해 실시된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여성 5명을 초청해 조촐한 축하연을 열었다.
![]() |
고 이태영 박사(오른쪽 세 번째)가 1984년 11월19일 여성 사법시험 합격자들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로 초청해 격려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박보영 대법관 내정자,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제공 |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84년은 여성의 법조계 진출에 한 획을 그은 해다. 80년대 들어 매년 2∼3명씩 배출되던 여성 사시 합격자가 84년 26회 시험에서는 무려 5명이나 나왔다.
그때까지 법조계에 여성은 18명이 전부였다. ‘새내기’ 5명을 받아들여 여성 법조인이 23명으로 늘어나자 이 박사는 “이제 별도의 여성 법률가단체를 만들어도 되겠다”며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87년 사법연수원 16기를 나란히 수료한 5명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박보영(50), 이정미(49), 윤영미(48) 3명은 판사가 됐고 이미현(50)과 김정선(49)은 변호사를 택했다. 법원에 남은 세 동기생 중 윤영미는 2002년 판사에서 헌재 연구관으로 ‘전직’한 데 이어 2009년부터는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활약 중이다.
![]() |
이정미 헌법재판관 박보영 대법관 내정자 |
법조계를 뒤흔드는 16기 ‘여풍(女風)’의 중심에 선 박 내정자를 향해 동기생들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윤 교수는 “(박 내정자는) 가사재판을 전문으로 담당하며 사회활동도 열심히 한 분으로 성품이 온화하다”면서 “대법관이 되면 소수자 입장을 대변하는 훌륭한 대법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광장 이미현 변호사는 “여성이 대법관에 제청된 것은 여성의 한 사람으로 축하하고 감사할 일”이라며 “(박 내정자는) 대법관이 되더라도 묵묵히 자기 일만 성실히 수행할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대법관 내정 이후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박 내정자는 모두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기자에게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둬 취재에 응하기 부담스럽다. 나에 관한 궁금한 사항은 대법원을 통해 질의하면 성실히 답하겠다”고만 말했다.
김태훈·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