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과 동거동락하며 사업 시작… 도로 내주고 한글학교 세워 문화 전파도
“희귀광물은 미래 자원전쟁의 핵심… 미리 확보해둬야 우월한 지위 누려”
“희귀 광물과 석재류를 미리 확보해 둬야지요. 그래야 미래 자원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우월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험난한 오지에서 버티면서 늘 생각했던 일입니다.”
㈜에코드림 박용철(62) 대표는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赤峰)시에서 ‘가오리 라오반(高麗老板)’으로 통한다. 가오리 라오반이란 ‘한국인 사장’이라는 뜻. 그러나 존경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이 스민 말이다. 츠펑시에 한국인 최초로 혈혈단신 들어가 10여년을 현지인들과 동고동락한 결과다.
㈜에코드림 박용철(62) 대표는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赤峰)시에서 ‘가오리 라오반(高麗老板)’으로 통한다. 가오리 라오반이란 ‘한국인 사장’이라는 뜻. 그러나 존경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이 스민 말이다. 츠펑시에 한국인 최초로 혈혈단신 들어가 10여년을 현지인들과 동고동락한 결과다.

박 대표는 어떻게 츠펑에서 이런 도전에 나서게 된 걸까. 그의 이력에 해답이 있다. 그는 유도선수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이어 봉사자와 사업가로 변신했다. 고향인 전북 정읍을 해외에 알리는 ‘자발적 홍보대사’로 나서고 있다. 유도선수 시절에는 육군 유도부에서 국가대표로 뛸 정도로 실력파였다. 정읍 배영중학교와 정주여자고등학교에서 10여년간 교사 생활을 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육군을 대표하는 유도선수로서 명예와 투철한 국가관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일상에 안주하는 따분한 생활이 싫었습니다.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정읍시를 중국에 소개하는 일을 시작했지요.”
그는 지인이 있는 중국을 왕래하다가 랴오닝성과 정읍시가 문화교류를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본격적인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2001년 랴오닝성 베이퍄오(北票)시 당서기가 정읍을 방문하며 교류가 이어졌다. 베이퍄오시 당서기와의 인연은 그에게 기회였다.
박 대표는 당서기로부터 츠펑시 지역이 때묻지 않은 미개척지로 희귀광물의 보고라는 말을 듣자 피가 끓어 올랐다. 평소 미래자원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앞으로 희귀광물을 확보하는 나라가 경쟁에서 앞선 나라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자 당장 집을 팔고 돈을 마련해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츠펑시로 날아갔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지요. 당시 52세로 다들 안정을 찾으려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저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훌쩍 떠난 게 10년이었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겨울에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리고, 여름에는 영상 30도를 웃도는 그야말로 혹한과 혹서가 공존했다. 상수도, 난방시설, 도로 등 모든 게 엉망이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같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끈질기게 괴롭힌 것은 인간관계였다. 열악한 자연환경 탓에 외지인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주로 몽골인들끼리 살아가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그들과 하나가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난관의 연속이었다. 특히 추운 지방 사람들이 그렇듯이 겨울이면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독특한 생활방식을 가진 그들과 친해지려 독한 술을 물 마시듯 먹어야 했다. 그들은 주는 술을 거부 없이 다 받아먹으면 자신들을 신뢰한다고 믿는 전통이 있다. 유도로 단련된 몸이지만 술을 이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들어간 지 몇 년이 안 돼 당뇨병이 발병하고, 위장 장애가 생기며 몸은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현지인과 어울리며 정성을 다하자 그들이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과 친해지자 몸을 치료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지인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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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드림 박용철 대표(오른쪽)가 끝없이 펼쳐진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시 대평원에서 광물자원을 탐사하고 있다. |
초원생활에 익숙한 몽골인들은 집을 잘 지을 줄 몰랐다. 금세기 들어 초원 생활이 어려워지고 정착이 시작되면서 점점 자연부락이 형성됐지만 도심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길가에 그냥 집을 얼기설기 지어서 살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하수처리시설이나 길이 계획적으로 설계될 수가 없다. 때문에 집안에서 버린 하수에다 배설물까지 쏟아져 나와 길은 늘 진창이고 배설물 냄새까지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주민대표를 설득해 주민들의 의견을 모은 뒤 자비를 들여 길을 반듯하게 내주고, 하수처리시설을 별도로 마련해 주었다. 마술처럼 질퍽이던 길이 마른 땅으로 변하고 마을에 진동하던 냄새도 사라졌다. 변화를 경험한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그를 ‘가오리 라오반’이라고 부르며 신뢰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츠펑시에 들어간 지 5년여가 지나서야 일어난 변화다.
이때부터 박 대표는 본격적으로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하고 싶었던 희귀광물 찾기에 나섰다. 현지에 에코드림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현지인들을 고용했다. 현지인들은 일거리가 생기고 월급까지 받자 대환영을 하며 그의 일을 앞장서서 돕기 시작했다. 교사 경력을 살려 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쳐왔던 그는 사비를 들여 우리 문화와 한글을 보급할 한글학교를 세워 내년에 개교할 예정이다.

그가 회사를 만들어 처음 시작한 것은 츠펑시 외곽에 위치한 대초원을 탐험하는 일이다. 츠펑시만 해도 면적이 우리나라 충청도 정도로 외곽으로 나가려면 길이 아닌 길을 차로 3시간을 달려야 하기에 현지인들의 도움이 없이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특히 츠펑시의 북서 쪽에 위치한 울란부통 지역은 박 대표가 자주 찾는 지역이다.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에 화산석 등 희귀 석재가 지천에 깔려 있다. 최근에는 세계 풍력발전업체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수만개의 풍력발전기를 끝도 없이 설치해 장관을 이룬다.
그는 츠펑시 도심에서 차로 왕복 6∼7시간이 걸리는 이곳을 거의 매일 몇 년간을 왕복하다시피 했다. 지도에 표시된 길이 없어 현지인이 아니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초원에 고립되기 일쑤인 지역이라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현재 광활한 대초원 지역에 5개의 희귀광물 광산과 화산석으로 불리는 고급 현무암, 물을 빨아들이는 암석을 생산할 권한을 확보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희귀광물은 기능성 모르타르 원료, 토양개량제, 탈취제, 정제용, 의약품·화장품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미래자원들이라고 한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박 대표는 네이멍구 대초원의 기상을 대한민국 땅에 옮겨놓는 꿈을 꾸고 있다. 칭기즈칸이 말을 달리던 대초원의 광활함과 기상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서울, 순천, 울산, 제주 등지에 네이멍구에서 가져온 화산석으로 대초원을 연상케 하는 자연공원인 ‘야생화 영토’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제주도에는 네이멍구 화산석을 소재로 한 국내 최초, 최대의 암석공원과 ‘야생화영토’를 조성 중이다.
그는 국가적 차원에서 확보가 필요한 희귀광물을 하루빨리 국내에 들여와 국가경쟁력에 보탬이 되길 바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원이 고갈되고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가에서 자원을 선점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들어 네이멍구 자치주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자원개발이나 유출에 대한 감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선점한 자원 이외에는 채굴권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까지는 제 개인적으로 오지에 들어가 전 재산을 털어 자원을 확보했지만 앞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희귀광물 개발에 참여하는 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읍=박종훈 기자 kkk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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